괴산 어르신 통기타 연주단
괴산 어르신 통기타 연주단
  • 신도성
  • 승인 2013.04.26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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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치며 삶의 활력 찾는 ‘실버세대’

“우울증 고치고, 스트레스 날리고”
“손가락의 굳은살 자랑스런 훈장”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광경이 음악회에 출연한 오케스트라 못징 않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광경이 음악회에 출연한 오케스트라 못징 않다.
머리칼 희끗희끗한 어르신 20여 명이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지휘자의 손길에 맞춰 진지하게 부른다. 보면대 위에 악보를 얹어 놓고 통기타를 치면서….
카메라 플래시 터질 때 박자가 틀렸다고 '총각 같은 선생'에게 야단맞는다. '외부의 어떤 자극이 있어도 흐트러짐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받는다. 그래도 누구하나 인상 찡그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방송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단 모습이 떠올랐다.
괴산 어르신 통기타 연주단의 연습 광경이다.

'어르신 통기타 연주단'은 지난해 5월 괴산문화원이 문을 연 '문화학교'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즐거운 여가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사업이다. 괴산군의 60세 이상 주민들이 참여하는 통기타 교실 회원들로 구성된 실버 연주단이다.

◆도내 유일 '실버 통키타 그룹'
농업인, 가정주부, 귀촌인 등 음악을 사랑하는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도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모두들 치열했던 삶을 살면서도 가슴 한 켠에 음악에 대한 동경을 감춰두었던 사람들이다. 최연소인 62세 아주머니부터 82세 노인까지 있다. 평균 연령은 67세쯤 된다. 충청북도에서 유일한 '인기가 보장된(?)' 실버 통기타 그룹이다.

회원은 20명이다. 할머니가 12명, 할아버지가 8명.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한평생 살림만 해 온 노인들이고,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도 5명 있다. 일주일에 월·금요일 각각 2시간씩 괴산문화원 음악실에서 연습 한다.

처음엔 기본 음 자리나 계명을 읽을 줄 몰라 모두 힘들어 했다. 서로가 답답했고, 때로는 핀잔도 들었다. 손가락 끝이 터지는 고통도 겪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열정 하나로 이겨냈다.
이제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을 증명하는 자랑스런 훈장이다. 생초보로 시작, 1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는 '사랑해' '과수원길' '고향의 봄' 등은 악보를 보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손녀가 할머니 멋있데”
이옥자 씨는 요즘 주변에서 '늦바람이 났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집은 괴산군 감물면 목도리. 읍내 한 번 가려면 10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가야 하는 두메산골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매주 두 번씩 읍내 문화원으로 출근한다. 농번기인 요즘에도 거의 빠지는 날이 없다. 기타에 필이 꽂혔기 때문이다.

황규옥 씨는 “노인들끼리 기타반주를 곁들여 노래를 하니까 너무 좋아. 중학교 다니는 손녀가 할머니 멋있다고 난리야. 생일날 축가를 기타 연주하면서 불러줬거든”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팔을 다쳐 붕대를 감고 수업에 참석한 허인자 씨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인지라 악보를 큰 종이에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연습을 했다. 아마도 회원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 살다 귀촌한 이상호 씨는 “내가 직접 기타를 들고 노래 부를 수 있으니, 청춘을 다시 찾은 것처럼 즐겁다. 시골에서 외로웠는데 기타 덕분에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올 들어 수업시간에 하루도 빠진 날이 없는 김순례 씨는 “몸이 아프다가도 기타만 들면 아픈 것을 잊는다”며 “노래 연습하는 날은 학창시절 소풍가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학창시절 노래를 좀 했었다는 김선일 씨는 “통기타교실 모집 공고를 보니 뭔가 '번쩍' 하더라고. 세시봉이 되살아 난거지. 작은 꿈을 이뤘으니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권복순 씨는 "기타교실에 나오기 전에는 우울증에 걸려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울증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활의 활력을 찾았다"며 고마워했다.

권 총무는 20년을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오로지 일밖에 몰랐다. 모든 것 내려놓고 싶을 만큼 무기력증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문화학교에 등록하게 됐다. 기타를 배우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고 했다.

강사 이준재 씨는 “어르신들이 뭔가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며 “노년에 음악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행복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어르신 통기타 연주단이 면단위 한마음 축제나 어린이 행사에 초청을 받아 지역명물로 화려하게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 5월 24일 '작은 음악회' 출연을 계기로 공연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신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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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 너무 좋아요”

황옥련(66) 회장
황옥련(66) 회장
괴산에서 유명한 중앙외과 안채 정원에서 만난 황옥련 회장은 기품이 있어 보였다. 50대에 괴산군여성단체협의회장을 지냈던 전력이 대화에서 묻어났다. 어렸을 적에 피아노를 배웠다는 그는 요즘 심정이 60년 전 그 때와 같다고 했다.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 너무 좋아요. 어렸을 적에도 피아노 치는 게 재미있었거든요. 나이 들어서 배우려니 힘들기는 하지만, 생활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는지 몰라요.“

그는 통기타교실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문화원에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우울증이나 외로움을 떨치고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취미생활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원에서 5월에 제2기 통기타 모임을 출범시킨다고 해요. 정말 적극 권하고 싶어요. 새로운 경험을 해보라고. 나이를 극복하고 도전해 보라고…”

그는 실력을 길러 어린이교실 등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며,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했다. 핵가족이 대부분인 요즘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말했다.

"옛적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 무릎에 앉히고서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황 회장은 '실버 스토리텔러' 준비에 분주하다. 대전까지 가서 시험을 치고 왔단다. 할머니의 역할은 교사나 젊은 부모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는 '멋진 할머니'- 실버 스토리텔러를 꿈꾸는 그의 삶에 대한 열정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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