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집 쉼터 내려놓기펜션
흙집 쉼터 내려놓기펜션
  • 신도성
  • 승인 2013.04.0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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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하고 땀으로 찾은 희망의 ‘힐링캠프’
교통사고로 수술 5번 받고 500일 입원
혼자 힘으로 4년 동안 흙집 6채 지어
자연과 조화이뤄 … 연간 3000명 찾아

야트막한 산자락에 버섯모양의 흙집 6동이 줄을 서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버섯모양의 흙집 6동이 줄을 서 있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버섯 모양을 한 너와집 형태의 원형 흙집 여섯 채가 나란히 웃고 있다. 아궁이를 벌리고, 잘 정돈된 장작을 옆구리에 낀 채로. 방문을 열자 기분 좋은 솔 향이 확 풍긴다. 황토벽 중간 중간에 나이테가 보이는 통나무가 박혀 있다. 황토벽 등잔대에 들어앉은 등잔은 벽을 까맣게 그을려 놓았다. '대중없이 장작불을 지피면 바닥이 너무 뜨거워 신체 중요 부분이 눌러 붙을 수도 있다'는 경고문(?)에는 해학이 숨어 있다. '내려놓기'펜션의 풍경이다.

괴산군 칠성면 송동리 솔골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판. '털썩 내려놓고 쉬었다 가소서' - 산막이옛길 흙집 쉼터 '내려놓기' 펜션.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내려놓기' - 저명한 철학 교수나 유명한 스님의 저서명으로 어울릴 것 같은 이 단어가 펜션 이름이다.
소나무와 황토로만 지은 집. 이름도 일용이네 삼식이네 등 구수한 냄새가 난다.
소나무와 황토로만 지은 집. 이름도 일용이네 삼식이네 등 구수한 냄새가 난다.
◆털썩 내려놓고 쉬었다 가소서
“사람은 누구나 욕망과 욕심 속에 살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버릴 수는 없겠지만, 내려놓을 수는 있는 거지요. 경쟁과 갈등, 욕심…. 다는 아니더라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조경업을 했었다. 10년 전 아내와 함께 연풍 수옥정 공사현장에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형 트럭과 충돌한 것. 수술을 5번이나 받았다. 장애 판정도 받았다. 저절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사고 나기 전과 너무도 달라진 현실. 기존에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절망 속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빛을 찾았다.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으면서 부동산 경매에 대해 공부했다. 남들이 꺼려하는 지분 경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퇴원 후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죽을 목숨'인데 살아서 일하는 것이 감사했고, 축복이라 생각되었다.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기반이 마련됐을 즈음 배낭 둘러메고 사고를 당했던 칠성을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주인인 나종선 씨가 살림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주인인 나종선 씨가 살림집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성치 않은 몸으로 혼자 4년간 공사
야트막한 산자락 1200평의 땅을 사들였다. 지분 경매를 통해 어렵사리 매입할 수 있었다.
달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 이곳에 자연경관과 어울리는 흙집을 지으리라 결심했다. 전기도 없는 산자락에 컨테이너 하나 갖다 놓고 혼자 생활을 시작했다. 다리도 성하지 않은 몸으로.

기존에 간직하고 있던 생각, 가치관을 내려놓지 않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무모한 일이었다. 생각의 힘은 무서운 것이고,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도 없어지는 법. 그렇게 혼자의 힘으로 흙집 6채를 지었다. 4년이란 아주 긴 세월동안에. 초인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몸은 매일 녹초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머릿속에 그린대로 집 모양이 갖춰지고, 뜻한 대로 되면 그 희열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지요.”

“어릴 적 마당에 쌓인 눈을 크게 굴려 쌓아 그 속에 굴을 파서 짚을 깔고 생활했었다”는 그의 원초적인 집짓기 본능이 발휘된 탓일까? 아니면 그의 혼을 불어 넣은 땀방울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버섯 모양을 한 특이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황토집이 완성된 것이다. 한국형 이글루의 창시자(?)인 그지만,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전라도 남원의 흙집 건설현장에 가서 6개월 동안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배웠는데도 그랬다.
야생화와 봄나물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야생화와 봄나물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흙·나무·돌…자연의 이치로 지은 집
“모든 걸 저의 아이디어와 구상대로 했습니다. 어려움이 왜 없었겠어요. 구들은 세 번이나 뜯었다 고쳤다 한걸요.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 구상대로 사각형이 아닌 원형으로 지었습니다.” 40cm 두께로 흙벽을 쌓고 강원도에서 구한 육송을 박아 미관과 건강성을 살렸다. 지붕도 소나무를 깎아 맞추어 기왓장을 대신했다. 구들도 지역에서 구한 자연석을 이용해 깔았고, 장판도 종이를 깔았다. 조명등에는 앙증맞은 소쿠리를 씌워 촌티를 더했다.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대세지만, 그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는 펜션의 콘셉트를 '힐링'으로 정했다. 그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까.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내려놓기라는 단어와도 썩 어울리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흙과 돌, 나무로만 이루어진 집이 지어진 것이다. 철저하게 자연의 일부분을 이루도록 했다. '힐링'은 마음 비우고 자연과 동화되면 얻을 수 있는 것. 그래서 그가 지은 흙집에는 방에서 누우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천장에 창을 냈다. 쏟아지는 별빛을, 흩날리는 함박눈을 따끈한 방바닥에 누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힐링'이 뭐 별건가요. 내려놓으면 되는 거죠. 내려놓으면 다른 걸 얻게 돼요. 어찌 보면 재충전이지요. 그래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한폭의 동양화 같은 겨울 풍경. 겨울철에도 찾는 고객이 많다.
한폭의 동양화 같은 겨울 풍경. 겨울철에도 찾는 고객이 많다.
◆사계절 아름다운 친자연적인 쉼터
그래서 내려놓기 펜션에는 그 흔한 족구장도 없고, 노래방 기기도 없다. 대신 푸성귀를 마음대로 뜯어다 먹을 수 있는 널찍한 텃밭이 있고, 귀하다는 돌미나리꽝이 있다. 주변에 돌나물이 지천에 깔렸고, 뒷산에서는 참나물, 취나물, 두릅 등을 딸 수 있다. 느타리버섯과 표고버섯 농장도 마련돼 있다. 그리고 전국 최고의 맛을 지닌 올갱이가 살고 있는 달천이 흐른다.

봄에는 산나물 뜯기, 여름에는 물고기 잡기, 가을에는 감자 고구마 캐기 등 '힐링'에 도움을 주는 친자연적인 행사가 가능하고, 겨울에는 그림 같은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돈댁, 오복이네, 삼식이네, 이서방네, 일용이네 등 집집마다 물고기잡이용 족대가 하나씩 준비돼 있다. 해먹(침상 그물)도 설치돼 있고, 자전거도 마련돼 있다.

무인판매점. 믿고 살고 싶어서 만들었다.
무인판매점. 믿고 살고 싶어서 만들었다.
◆'사람 믿고 싶어' 무인판매점 만들어
이곳에는 '셀프매점'이 있다. 무인판매점이다. 소주, 맥주, 라면, 장갑, 음료수, 담배, 번개탄 등을 갖다 놓았다. 계절에 따라 딸기, 토마토,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도 준비해 놓는다. 한 켠에 돈 넣는 통이 놓여 있다. 고객 편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울타리도 없는 공간이지만, 이 안에서 만이라도 믿고 살고 싶어서 만들어 놓았다.

홈페이지도 잘 정리돼 있다. 놀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귀촌길잡이 흙집 짓기 등의 알찬 정보가 실려 있다. 수준급의 홈페이지 제작도 직접 했다. 예술적 감각이 돋보인다. 주말 부부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독학으로 배워 그려놓은 동양화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타고난 감각 덕분인 듯싶었다.

'내려놓기펜션'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고 즐길거리도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산막이옛길은 괴산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볼거리이자 부담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이어지는 충청도 양반길은 갈은 구곡의 숨겨진 비경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등산코스다. 달천강 갈대밭은 포토존으로 손색없고, 괴산호 돌담정원은 연인들 데이트코스로 안성맞춤이다.

등잔불은 어릴적 추억을 되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등잔불은 어릴적 추억을 되살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연간 3000명 찾는 '힐링캠프'
이곳은 문을 연지 2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방송에 힐링하우스로 소개된 덕분에 작년 한 해 동안 2500여명의 고객을 유치했다. 한번 다녀간 고객이 지인을 소개시켜 주는 경우도 많고, 계절별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여름철에는 주중에도 방이 차고, 주말에는 사시사철 빈방이 별로 없다. 올해는 3000명 이상의 고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덤으로 사는 인생' 사업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호성적이다. 산막이옛길에 왔다가 하룻밤 묵는 경우도 있지만, '내려놓기펜션'에 왔다가 산막이옛길을 관광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고객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이고. 주중에 12만 원, 주말엔 15만 원의 방값을 받지만, 성수기라도 방값을 올리지는 않는다. 홈페이지와 전화로 예약을 받는다.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고 훌륭하게 재기한 사람, 적지 않은 나이에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룬 사람, 혼자만이 아닌 주변과 더불어 사는 사람 - 나종선. 그는 '희망을 여는 사람' 이었고, '내려놓기펜션'은 희망을 여는 현장이었다. /신도성 기자





직격 인터뷰
"내려놓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내려놓기' 대표 나종선
-혼자 집을 지었다고 들었다. 가능한 일인가?
“집을 지었다기보다는 제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미쳤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500일 동안 입원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지금도 다리는 제대로 펴지 못합니다. 대신 다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허허“

-시골에서 혼자 외롭지 않은가?
“찾아오는 고객이나 마을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제가 새마을 지도자입니다. (웃음) 시간되면 그림도 그리고 스킨스쿠버도 하구요. 아름다운 자연이 연인이지요.”

-정성스럽게 쌓은 돌탑이 있더라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는 걸림돌이지만, 제자리를 찾게 되면 디딤돌이 될 수도 있잖아요. 공사현장에서 나온 돌을 보기 좋게 쌓았더니 손님들이 작품이라고 하시더군요.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문장대온천 개발되면 피해가 클 텐데, 신경 쓰이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삭발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이 깨끗한 곳이 쑥대밭이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환경단체 활동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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