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정 전)증평군 농협 조합장
이규정 전)증평군 농협 조합장
  • 나영순
  • 승인 2012.03.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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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안 하고 살려는 양심지킴이 역할”

▲ 지역사회 활동가의 성과에 대해 피력하고 있는 이 조합장의 모습이다.
▲ 지역사회 활동가의 성과에 대해 피력하고 있는 이 조합장의 모습이다.
항상 넉넉한 마음으로 긍정적인 사고와 모나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려는 마음을 갖고 2003년부터 2008년까지 8년간 12대, 13대 증평농협 조합장을 지내온 이규정(65), 그는 엽연초 생산협동조합에 근무하면서 잎담배 경작이 농촌 경제에 커다란 소득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엽편기를 이용하게 하는 등 노동력 절감효과를 기하려 애쓴 장본인이다.

■ 잎담배 생산 농가들의
소득증대에 기여

이 조합장은 증평초, 증평중, 청주농고를 졸업하고 9남매(5남 4녀) 중 일곱 번째로 증평읍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기차 통학을 하면서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갔다.
초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집에서 잎담배 농사를 지어 담배 밭 해충방제 및 수확 건조하는 작업의 일손을 돕는 힘든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살았기에 애정이 더욱 남달랐다.
가족으로는 부인 송인자(60) 씨와 2남 중 회사원인 장남 이종경(37)과 국토관리청에 근무하는 차남 이종승(34)을 두고 있다.
3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72년 증평엽연초 생산 조합에 입사해 잎담배 생산농가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1989년 증평엽연초 생산 조합 생산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잎담배 공동 건조장 및 경작 전반에 걸쳐 기계화를 추진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경작규모의 확대를 위해 시행승인이 상당히 어려운 시점에서 1개 마을에서 1농가당 잎담배 경작 면적 50단보(1500평)를 경작하는 5농가를 선정하는 등 시범사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증평군 도안면 송정리 1구(입장마을), 당시 대의원(김의영 씨)과 젊은 사람들 5명을 규합해 잎담배 건조장을 설치하는 시범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쾌거를 이뤄 냈다.
이 조합장은 시범사업 성공을 위해 일본 후쿠오까 잎담배 경작지를 방문해 잎담배 공동건조장 운영방법 및 잎담배 경작기계화현실을 몸소 배워와 접목 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 전매청 감독기관인 재무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전매청장과 재무부국고국장이 입장마을을 방문해 경작지와 경작과정, 기계화작업을 시찰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 전) 증평농협 조합장으로서의 역할
2003년도에 사회적분위기가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해 개혁이 돼야 한다는 어려운 시기에 12대 증평농협 조합장으로 취임하게 됐다.
농업인 단체에서 강력히 주장하는 농업개혁이라는 전제하에 많은 요구 사항과 내부적 직원들의 동요와 농업인들의 불신이 고조되는 불안한 상태에서 농업인 단체를 중심으로 농협개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회를 중심으로 조합장들과 여러 번의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등 조합장직을 수행하면서 노후화 된 미곡종합처리장 개보수와 송산리 택지개발지구 토지 보상가를 현지인이 수령한 보상가의 80%를 농협예금으로 끌어들인 사례는 취임 당시 1000억 원 정도의 예금을 2011년 10월 1일 퇴임 당시에는 1600억원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추곡 수매 시에는 수매장을 방문해 검사원에게 농민들이 직접 하기 힘든 어려운 여건을 대변하면서 농가소득증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생산농가들과 함께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및 구리 농수산물경매시장 농협유통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판매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증평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쌀의 소비를 위해서 대기업유통업체에 쌀 납품 계약을 체결해 쌀 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대학찰옥수수를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계약을 체결해 농가소득증대에 기여한 일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직원상호간의 열정적인 노력과 주위 지인들의 적극적인 합류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 증평 지역사회 활동성과의 보람
1992년 증평엽연초 조합에서 엽연초중앙회로 전출해 감사실에서 근무하던 중 1994년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직 후, 증평지역의 여러 사람들과 협의해 증평시민회를 결성했다.
그러던 중 증평번영회장의 유고가 생겨 이 조합장이 증평번영회장을 맡으면서 증평의 각종 사회단체를 총망라하는 증평자치단체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다시 한 번 증평이 시나 군으로의 승격을 위해 활동하기로 하고 지역의 원로를 중심으로 증평자치단체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번영회, 리우회 및 각종 사회단체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부회장으로 영입해 군 승격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한다.
주민궐기대회 및 관계기관 방문 설득 등 현직 군의원이 참여하는 등 주민대표들과 함께 삭발하는 의식 진행과 여러 단체 기관장들의 방문 등 증평군 설립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해 국회 의결을 득해 증평이 군으로 승격하게 된 것이 2003년, 대통령이 법을 공포함으로써 초대 증평군수와 군의원 선거가 보궐선거로 만들어져 명실상부한 증평군이 만들어지는데 직·간접적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주민의 한 사람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조합장은 증평문화원 이사, 증평 바르게 살기협의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증평초 총동문회장, 증평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증평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에서 활동할 당시 증평지구대 사무실이 협소해 2006년도에 괴산경찰서 증평지구대 사무실을 지금의 규모로 확장 건축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민들이 괴산경찰서 민원실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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