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열 증평군 기획감사실장
양승열 증평군 기획감사실장
  • 나영순
  • 승인 2011.12.3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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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된 공직생활 38년 마무리”

기획감사관실에서 그 동안 38년여 간의 공직생활을 회고했다.
기획감사관실에서 그 동안 38년여 간의 공직생활을 회고했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좌우명으로 여기며 증평과의 남다른 인연을 맺고 물질보다는 정신적 삶에 가치를 두며 살아온 증평군 기획감사실장 양승열(58), 그는 12월 28일에 공직생활 38년을 마무리했다.

음성군 맹동면의 시골 마을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체신공무원인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해 온 어머니의 삶을 바라보며 항상 정직과 성실, 겸손을 생활태도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며 생활했다.

조병복(57)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가장으로서 작지만 급여의 일부분을 복지시설에 기부하며 나눔의 실천에 동참했다.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하는 그의 생활 습관은 37년간의 공직 생활 정년을 1년 6개월 정도를 앞두고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직자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사기를 진작 시키고 축복을 받으며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 감사한 것은 서로 융화하는 마음가짐

1974년 진천군 덕산면에서 지방행정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으로 지금껏 여러모로 행정여건이 열악한 증평출장소에서 행정체계를 확립하는데 힘써 왔다. 진천 상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전중, 진천농고, 청주과학대를 졸업했다.

1997년 사무관으로 승진하면서 도안면장을 역임하고, 기획감사실장인 지방서기관으로 퇴임하기까지 재무과장, 행정과장, 주민복지실장 등 주요 직책을 거치면서 증평군 지역민과 군정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 했다. 때로는 휴일도 없이 근무해 가족과 여행 한 번 가 보지 못했지만 큰 보람으로 여기며 생활해 준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증평군에 30대에 와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생활했기에 퇴직 후에도 증평군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한창 성장해 가는 학생들도 고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 하에 퇴임 전까지도 형석중학교 학생들에게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 역사 바로 알리기' 강의를 할 정도의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 근본적인 활동으로 베풀고파

객지인이 경리계, 행정계 등 주무계에서 근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읍·면 등으로 전출을 가야 할 상황에 자청에서 간 것도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도안면장 시절에는 45세의 젊은 면장으로 어르신들께 정중한 태도로 대하고 지역의 행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소신껏 일한 보람이 크다고 한다.

특히 지역을 따지는 것은 증평 발전의 걸림돌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큰마음으로 수용하고 포용하며 끌어안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매진했다. 그는 증평군 설치 실무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해 낸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는 진천군과 괴산군, 증평군에 이르기까지 객지에서 공직생활을 해 온 것이 좋은 경험이고 지역 간의 선후배에 대한 편견보다 융화로써 능력과 경력으로 일관해 온 것이 열심히 생활한 대가라는 사실이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증평에서 실제로 거주하면서 1991년부터 지금까지 증평군청의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퇴임하기까지 증평에 대한 열정을 갖고 생활해왔다. 그는 괴산군수표창, 충청북도지사표창, 내무부장관표창, 녹조근정훈장의 포상을 받는 등 1980년 초창기 괴산군청 재직 시에는 충청북도 공무원 교육원에서 2주 동안 교육받을 당시 교육성적우수 1위를 하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가장 보람됐던 순간

여러모로 행정여건이 열악했던 증평출장소에서 행정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자료를 수집했던 일이 보람된 일로 손꼽는다. 그는 자치 단체 설치를 바라는 주민들의 뜻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전달하기 위해 수시로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증평군 설치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03년 5월 '증평군 설치에 관한 법률' 이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증평군이 설치됐다. 그로 인해 증평군 설치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양 실장은 “38년여의 공직생활을 돌이켜 볼 때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증평군이 설치된 순간”이며 “인구가 부족해서 때로는 속상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 만큼 증평군 설치를 위해 동료 공직자, 주민들과 함께 열과 성의를 다해 증평군이 설치된 순간이 바로 제2의 고향이 만들어진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소통의 역할이 최우선

타고난 고향이 아니더라도 증평의 역사에 대해 출생한 사람 못지않게 관심이 많다. 그는 도안 면장으로 재직 시에는 도안의 역사를 찾아서 '옛 도안현을 아십니까' 라는 칼럼을 통해 현청이 화성리와 미암리 앞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405년까지 도안현을 유지하다가 후에 청안현으로 병합된 것으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도안면지』를 비롯해서 신규채용자나 증평지역으로 이주해 오는 군민들이 증평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증평군지』를 발간하는데도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그는 증평군 향토사연구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역사에 대한 고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것을 바탕으로 퇴직 후에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사회적 활동의 공간영역이 증평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서 공직이 아닌 산악회 등 지역의 여러 조직단체에 동참하여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함께 하고픈 게 소망이다.

무엇보다도 증평에 머무르면서 37년간 공직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힘이 닿는 한 행정경험과 사회생활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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