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38년 마감하는 윤기복 증평군부군수
공직 38년 마감하는 윤기복 증평군부군수
  • 나영순
  • 승인 2010.12.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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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가 인정하는 토목·건설 분야 베테랑

▲ (가운데) 윤기복 증평부군수가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 (왼쪽상단) 제88회 어린이날을 맞아 윤부군수가 모범어린이들에게 표창장을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 윤부군수가 재난대응 통합현장훈련에서 훈련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하단) 윤부군수가 지난 6일 2011 나눔캠페인 시·군·구 순회모금 행사장에 들러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 (가운데) 윤기복 증평부군수가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 (왼쪽상단) 제88회 어린이날을 맞아 윤부군수가 모범어린이들에게 표창장을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 윤부군수가 재난대응 통합현장훈련에서 훈련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하단) 윤부군수가 지난 6일 2011 나눔캠페인 시·군·구 순회모금 행사장에 들러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80년 대홍수 때 성공적으로 임무 수행
'근정포장' 등 16차례 훈·포장 수상

누가 말했던가.“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배움은 곧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깨어있는 자세로 늘 새로운 것을 익히면서 활기차고 적극적인 하루하루를 만들어 보라.” 지난 1월 1일 증평군 제7대 부군수로 취임해 1년간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해 온 윤기복 증평군 부군수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공직생활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는 38년간의 공직생활 가운데 35년을 충북도청에서 일했다. 사무관으로 승진해 제천시 상수도사업소장과 수도과장을 역임한 2년 가까이와 증평군 부군수 1년 등 3년만 기초자치단에서 근무했을 뿐, 거의 모든 공직생활을 도청에서 해 도정 전반을 잘 파악하고 있는 베테랑 공복이다.

윤 부군수는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 우군마을이 출생지다. 이 마을은 생활권이 증평이어서 초평 구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증평중학교와 증평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증평공업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역임했다. 그래서 고향인 진천은 물론, 증평 지역 발전을 위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어머니를 9살 때 여의고도 할머니 밑에서 생활한 그가 충북대학교 산업대학원 공학석사를 마칠 정도로 성실했고, 증평 부군수로 일하기까지'노력'이라는 단어를 늘 몸에 달고 다녔다. 그는 취미로 시작한 바둑도 수준급이다. 그동안 틈틈이 갈고 닦은 바둑실력은 아마추어 4단 정도다. 충북도 기관별 바둑대회에서 충북도청팀이 우승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상황대처 능력 탁월한 건설 전문가

그는 학창시절 도로가 제대로 없어서 거의 걷다 시피하고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다. 할머니의 그늘에서 도시락 싸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반찬투정 한 번 못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 탓에 공부하기가 어려웠지만 향학열만큼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는 초평면 진암리에서 증평까지 걸어서 학교를 다니며 학업에 열중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참된 학생의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그는 공직을 천직으로 생각해, 남들이 기피하는'재난상황실'에서 7급부터 4급 승진할 때까지 머물렀던 이유만으로도 성품을 알 수 있다. 그는 동료들처럼 자리를 옮겨보려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과장들이“왜 내가오니까 다른 부서로 가려고 해요”라고 하면서 만류하는 바람에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한 부서에서 장기간 근무한다는 것은 열정과 끈기 없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재난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고 실시간 어느 곳에서든 재난상황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밤샘 근무를 많이 해서 1주일씩 집에 못 들어간 적이 있다. 부인마저 혼자 집에 있기 무서워 친정에 가 있다가 엄격하신 장인의 호된 꾸지람으로 혼자 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친정에 간 사이 패물까지 다 도둑맞을 정도였다는 에피소드가 왠지 공무원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맡은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다하는 그의 소신은 업무 처리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1980년 7월 집중호우가 내리던 밤 12시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것도 비바람이 어찌나 휘몰아치는지 우산조차 쓸 수 없고 몸조차 가눌 수 없는 형편이었다. 거기다가 차까지 없던 시절, 사무실에 나가려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야 할 정도의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내가 이러면 안 되지,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라는 다짐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40분 거리인 충북도청 재난상황실까지 비를 흠뻑 맞고 걸어서 갈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당시 충북지역에 대홍수가 발생해 도내에서 107명이 사망하고 9300동의 공공시설이 완전히 파괴될 정도였다. 곳곳에 교통이 두절되고 저수지가 붕괴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았다. 당시 중앙 정부로부터 복구사업비를 지원받아 다시는 수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개량 복구를 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회상했다.

그는 도로과장, 하천과장, 건설전문위원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건설 분야에는 전문인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각종 TV 등 방송매체에 나가 토론을 벌였고, 중앙정부에도 수없이 찾아가 예산 지원을 건의했고,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부실공사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등 토목 건설 분야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 따라서 중앙부처에서'토목·건설 분야의 도지사'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한강 이남에는 거의 없는 사장교(斜張橋)인'청풍대교'건설, 증평~오창 간 4차선 도로 확·포장 사업 등 업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주민들의 개인적인 요구에 앞서 공적인 일을 최우선시하고, 투자효과를 파악하여 업무처리를 명확히 하는 모범 등으로 7급 공무원 당시'근정포장'을 받을 정도다. 포상이 우선은 아니지만 그 후에도 15개의 훈·포장을 받았다.


안정된 군정 운영 조화로운 발전 기여

윤 부군수는 다양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증평지역 발전에 앞장섰다. 도시와 농촌이 혼재돼 있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산업과 관광, 농업이 융합돼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폭넓은 주민 참여를 통해 도시와 농촌이 상생·발전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해 중앙정부로부터 개발촉진지구 지정 승인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성을 살려 증평읍 내성리에서 청안면 금신리를 잇는 3.6Km 구간 지방도에 대한 4차선 확·포장 사업과 증평 제1산단과 제2산단을 잇는 4차선 도로를 도안면 송정리까지 연장하는 사업을 충북도에 건의해 관철시키는 등 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그는 증평군이 지속적인 저탄소녹색성장 정책 추진으로 탄소포인트제 참여율 전국 1위, 청사에너지 절감률 1위 등을 차지하는 실적으로 지난달 23일부터 24일까지 2일간 일산 KINTEX에서 열린'2010 Me First 녹색생활대축제'에서 증평군이 네트워크부문 대상을 수상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또 농수산식품부가 2012년까지 100억원 투자해 조성하는 광역친환경단지 지역 유치를 이끌어냄으로써 지역 1차 산업 성장에 활력소 역할을 했다.


공직에 전념할 수 있었던 건 가족 덕분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인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부인과 동행한 여행이라고는 모범공무원 선정 때 단 한 번뿐이다. 공직생활 동안 늘 그렇게 생활해 왔기에 가족들도 불평불만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옆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뒷바라지 해 주는 부인의 덕도 컸다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 온 것뿐이라는 습관화 된 일상이기에 흔히 말하는'가족과 함께'라는 말보다'일이 우선'이었다. 그는 2남을 두고 있다. 장남은 청주시청 공무원이고 며느리도 같은 곳에서 근무한다. 작은 아들도 충북도청에서 근무하는데 진천군청에 다니는 며느리까지 합하면 5명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이 오봉(五奉)이라고 한다고 했다.

오로지 그는 업무에 열정을 쏟는 스타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여가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전문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했다. 그 결과, 사무관 승진 시험, 중앙·충북 공무원교육원 교육 등에서 성적이 좋아 최우수 공무원상을 4번씩이나 받을 정도였다.


“증평은 무한한 가능성 지닌 '희망의 땅'”

경상도 크기만 한 스위스가 잘 사는 나라인 것처럼, 면적이 좁은 증평군도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희망의 땅'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부군수는 “증평이 면적은 좁지만 독자적 기틀을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며 “ 지금 시대는 자치단체와 주민이 합심해 열심히 노력하는 지역이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28일 정년퇴임을 하는 그는“건설 분야의 전문가로서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퇴임 후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나 후배 양성을 위한 강의 등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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