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묵 前 괴산군수
김환묵 前 괴산군수
  • 나영순
  • 승인 2010.12.0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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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맑은 마음으로 덕을 갖고 살아야”

▲ 김환묵 前 괴산군수는 55년간의 공직생활을 회상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 김환묵 前 괴산군수는 55년간의 공직생활을 회상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맑은 덕행으로 일평생을 일관해온 민선 36대, 37대 김환묵 前 괴산군수를 찾았다. 고향은 괴산군 문광면 문법2리 원터로 가족이 많아 10남매로 7남 3녀 중에서 위로 3형제 중 셋째이고, 여동생 셋, 남동생 넷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10남매를 가르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어머니를 회고한다. 아버님 직계가 100명이 넘어 다 모이면 상당히 많아 집이 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제사 때는 어른만 해도 방이 꽉 찰 정도이며, 자녀는 2남 중 장남은 현재 괴산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둘째는 평택에서 사업을 한다고 한다.

■ 어려운 생활 극복하며 공무원의 길 선택
괴산에서 문광초, 괴산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충북대학교에 입학한 뒤 학도병으로가 군대를 제대하여 대학에 복학 후, 59년도에 가정이 어려워 대학을 2년 다니다가 중퇴하고 충청북도 지방공무원 1기생으로 괴산군내 면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괴산군 관내의 면사무소를 거의 근무할 정도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 했던 점을 회상했다.
그 후 충청북도청에서 근무를 한 후에 서기관으로 공직을 퇴직하여 괴산군수로 출마하여 군수에 당선되었던 것만 보아도 투철한 사명의식이 엿보인다.

■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인구 유입 시책에 혼신
괴산이 가장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구가 감소하여 여러 가지 농사일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공무원들이 자녀교육을 이유로 40% 정도가 출퇴근하고 있어(청주, 충주, 음성 등지)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공무원들을 독려하여 괴산군에 정착하도록 인구 증가 방안으로 군청 옆의 악산을 깎아 임대 아파트 120세대(원룸 80세대, 투룸 40세대)를 건립하여 공무원 80%, 주민 20%가 살도록 유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외지에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괴산고등학교에 기숙사를 건립하여 인구 유출을 방지하고 학교를 명문화 시키는데 노력한 점만 보아도 김군수의 추진력을 함축한다.

■ 지역 농산물의 명품화 추진에 기여한 공로가 커
괴산군 사과가 품평회에서 브랜드나 지명을 얻지 못하고 충주 원협이나 문경 원협으로 납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괴산군에서 과수 농가에 포장재, 융자금 등을 지원해 줌으로써 지금은 '괴산 사과'로 정착되었으며, 괴산 '청결 고추'를 알리기 위해 서울역, 지하철 등에서 수시로 홍보하고 고추축제를 개최함으로써 괴산 청결 고추가 전국에 알려지는데 혼신을 다한 점, '절임배추'는 96년도 동막골 고향 면에서 시작하여 300미터 샘도 파고 콘크리트도 해서 한 달 정도 되면 물량이 떨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아 괴산 지역에 부업 아닌 생업으로서 인기를 얻고 있어 보통 농한기에 손 놓고 있을 상황에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수입도 되고 여성들 돈벌이도 되어 농촌 소득 기반을 잡는 기틀이 되었다고 한다.

■ 군수를 하차한 후의 심정은

“아이디어로 재정적, 인적 뒷받침이 되어야 하므로 나는 36대 37대 군수로서 괴산에 살고 있는 이유는 괴산군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내 정신만은 그 게 아니에요, 발전을 보고 싶고 여러 가지를 지켜보고 또 어느 땐 조언도 하고 있어요.
현 군수가 소신 있게 괴산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점으로 보아 훨씬 나아지고 있어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김군수의 의중에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자'는 신념이 다시 한 번 느껴진다.
한편 “두 번째 선거 운동을 하는데 솔직히 작고하신 아버님이 다니시는 향교와 노인정에 추석 때 고기 서너 근과 정종 두서너 병을 선거의식도 안 하고 드린 것이 문제가 되어 어르신들을 공경한 것이 선거법에 저촉되는 일인 줄도 모르고 벌금 150만원의 판결로 그만 두게 되었어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내 운명이지 어떻게 하겠어요. 재판 받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군수를 그만 두니까 홀가분하더군요.
재개하는 것에 대하여는 군민들이 나한테 전화도 주고 재선하여 나오라고 듣기 좋은 말로 하겠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에서 설자리, 앉을 자리를 알아야지요. 다만 내가 과거에 못 이룬 것을 다 이뤄줬으면 하는 욕심이고 괴산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하나 잘 풀릴 수 있도록 군정이나 시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요즘은 공무원도 정신 개선도 많이 됐고 잘 하지만 지자체 자원이 약해 예산 부족으로 의지 할 수밖에 없는 도비 등이 원래 열악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했지만 일반 건설 사업 같은 것, 농업 분야에 많은 개선이 왔다는 것은 다행스러워요”라는 의중에서와 같이 마음 고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 퇴직 후 취미 생활
“20년이 된 '청명회'는 퇴직하고 나온 사람들의 모임으로 교양대학을 운영하는데 시장·군수를 지낸 사람들도 다니고 배울 게 많아요. 마음의 정리도 안 되어 회원으로 승낙을 안 했다가 15기로 입학하여 끝까지 하려는 성격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아 개근상을 받았어요.
작년에 '청명회 회장'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수료생이 540여명이에요. 다른 단체보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친목도모와 명심보감 등 붓글씨는 2시간씩 수양을 하고, 문화재 때 작품들을 내놓고, 거의 지역 사람들이라 지역에 기여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모두 잘 하고 있다”는 말에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배인 모습이다.

■ 최근의 근황과 당부사항
당선 되고 몇 달 있다가 아내가 쓰러져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데 내가 복이 없어 그렇지요. 청주 아파트를 정리해서 옆에 조카 딸네랑 집을 짓고 조용히 살고 있어요.
아침 시간에 1시간 정도 산에 올라갔다가 책도 보고 이리저리 대소사에 다니고 있으며 이제 지역에 살면서 괴산이 훨씬 발전하는 모습에 농가소득, 학교문제, 교육시설도 잘 되어 지역에서 인재도 많이 나오고 경제도 회생되면 좋겠어요.
5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해 오면서 주민들이 선출해 준 군수를 했는데 군민들이 뜻을 모아 주었으면 해요. 사사건건 비판해서는 안 돼요. 단합, 협력을 해야 지역이 발전될 수 있어요.
끝으로 신문사에 당부할 말은 지역의 군정이 됐든 교육, 치안 모든 분야가 지역 신문이 굉장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중앙지 등은 뉴스로 갈음해도 되지만, 지역민들은 신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 기사를 다뤄주고, 기자 분들이 발로 뛰는 대로 성과가 나타나거나 밝혀지고 알려지리라 봅니다. 언론의 중요성을 비판적이 아니라 발전의 선봉자 역할이기를 바랍니다.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으로 지나온 군정을 요목조목 되짚어 주는 온화함에 퇴임 후의 김 군수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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