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호 前 증평군수... '증평르네상스' 개척한 공로자
유명호 前 증평군수... '증평르네상스' 개척한 공로자
  • 강성진·이재근
  • 승인 2010.10.28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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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엔 언제나 군민 사랑의 정념 불타”

강한 추진력으로 성과 올린 '마이다스 유'
주민 역량 최대한 결집… 군정발전 '올인'

지금도 증평군민들로부터 그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유 군수님은 언제나 현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니까요. 농번기에는 모내기하는 논에서도 만날 수 있었지요. 군수님 점심시간인데 식사나 같이 하십시다” 라고 권하면 “아닙니다. 식사는 집에 가서 하면 되는데 주민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됩니다” 라고 거절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고… 그러나 '일 잘하고 항상 매사에 열심이었다' 는 주민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유명호 前 증평군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도내 유일의 3선 자치단체장이라는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풀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공천의 화려함도 물량으로 미는 힘도 없이 깨끗한 선거와 참 공약만을 가지고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을 만나고 촌로들과 농촌의 실정을 함께 걱정하며 고충과 실상을 몸소 체험한 일은 비록 낙선은 했으나 오히려 큰 공부가 되었다고 웃음지었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주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부정부패를 두려운 적으로 알며 진정한 목민관을 지향하던 이 시대의 청백리 유명호 전 증평군수를 만나 난국을 풀어가는 해답을 들어보았다.

1942년 괴산군 청천면에서 7남매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공직생활을 했던 부친이 '동일약방'을 열면서 증평읍에 정착하게 된다. 한국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고난을 겪었던 시절이었다. 철이 들면서 고난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삶의 지혜로 찾던 어린 소년. 오직 배움만이 고난을 물리칠 수 있음을 일찍 알게 되었던 유명호 소년은 충북대 약학을 전공하며 졸업 후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게 된다. 이어 괴산군 약사회 장을 역임하면서 증평JC를 창립하는 등 그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의거북처럼 신념을 가지고 쉬지 않고 정진하는 실천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괴산군수 로부터 정책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게되는데 그것이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2003년 어려웠던 증평 출장소 시절을 마감하고 뒤늦게 출발한 증평군의 첫 자치단체장으로 취임하면서 반목과 갈등으로 흩어졌던 민심을 하나로 수습하며 군정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또한, 취임 당시 '히든 챔피언'이 되겠다는 그의 약속은 2007년 9월 13일 신활력사업 대통령상 수상과 2007년 10월 19일 행정혁신 대통령상 수상으로 지켜졌고, 이와 함께'증평 중심론'과 '긍정의 리더십'은 증평일반산업단지 조성으로 큰 결실을 맺게 된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이 신생 자치단체로써는 무리라고 했던 증평일반산업단지를 5년여 간의 대역사 끝에 신성홀딩스, 한국철강, 에이원테크 등 녹색성장의 핵심인 태양광 전지 관련 기업을 집중 유치해, 국내 태양전지 및 모듈 생산량의 40%를 달성케하는 등 증평이 '태양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 했다.

그는 또 절반의 민선1기 출범 이 후 주민들과 약속한 부분을 차질 없이 수행하였다. 2006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전국 자치단체 중 맨 끝에서 맴돌던 증평군을 급성장시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며 '마이다스 유' 라는 닉 네임을 얻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유 군수는 임기 동안 정부 중앙부처를 홀홀 단신 수시로 드나들며 지역의 역점사업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국비확보를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증평은 면적이 협소하고 역사가 오래지 않으므로 전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1등을 해야 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었고 지칠줄 모르는 추진력과 불타는 의지를 엿 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또한, 그는 군수 재임 시절 직원들에게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이 있다고 한다.

"언제나 현장에서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뛰어야 한다. 군수가 열심히 뛰면 증평이 변화하고 증평이 변화하면 주민생활이 달라진다. 주경야독이란 말이 있는데 공무원은 낮에는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저녁에는 책상 앞에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공부하는 것이 체질화 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행정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 정치란 어렵다. 살아있는 생물 같다고도 한다. 그러나 쉽게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국가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또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국민의 정서와 상식에 맞는 도덕성을 소유한, 능력 있는 사람에겐 정치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증평읍, 도안면 27개리 마다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동정을 훤히 파악하여 그들과 어우러져 살아온 지난 군수 시절. 결코 무게로 가늠할 수 없는 유 전 군수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증평군민들을 향한 짝사랑의 정념이 불타고 있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오랫동안 직장에 매어 개인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건강과 휴식을 위해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생각으로 축적된 지헤와 역량을 지역을 위해 더 쓰고 싶다하니 고맙기까지 했다. "이제 색칠만 남았습니다" 를 외치며 증평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자 했던 유명호 前 증평군수. 그가 지역에 우뚝 선 기둥으로 버티어주는 한 내 고향의 내일은 희망으로 빛나고 그 빛은 사방으로 뻗어나는 현재 진행형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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