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막걸리 제조에 바친 ‘자랑스러운 직업인’
평생을 막걸리 제조에 바친 ‘자랑스러운 직업인’
  • 신도성
  • 승인 2015.11.11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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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학 괴산 제일양조장 대표
신도성“돈 벌려고 하면 좋은 술 못만들어”
전통방식으로 빚는 것 '맛의 비결'

▲ 권오학 대표가 일본식 건물인 양조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권오학 대표가 일본식 건물인 양조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얼마 전 충북도는 '충북도 자랑스러운 직업인'을 선정, 표창패를 수여했다.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오랫동안 묵묵히 일해 온 도민 6명. 이들은 수십년 양조장 주인, 이발사, 국밥집 주인 등으로 일해 온 친근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권오학(68) 대표가 여기에 포함됐다. 사실은 진작 표창을 받았어야 할 사람이다.


일본식 건물 그대로 유지
괴산읍사무소 앞에 가면 일본식 건축양식의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이곳이 제일양조장 건물이다.

제일양조장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00년은 족히 됐을 것 같다.

양조장 문을 들어서니 달콤한 내음이 풍긴다. 허름한 분위기가 반가웠던 것은 아마도 흑백 톤으로 빛바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십년 수명이 고작이라는 양조장의 수명이 100년을 이어오고 있으니…. 세월의 흔적은 양조장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은 전 주인이 3대에 걸쳐 운영하는 것을 지난 해 그가 인수했다. 말이 인수지 그가 물려받는 것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곳에 평생을 받쳤다. 1966년 배달원으로 입사. 50년을 한결같이 일했다.


19살에 양조장 취직

“19살 나이에 생계를 위해 배달원으로 취직했지요. 바닥부터 일을 배웠어요. 군대 다녀와서는 양조기술을 인정받아 공장장이 됐지요. 그 햇수만도 40년에 가깝습니다”

좋은 술은 다음날 숙취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를 위한 그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기본은 무엇보다도 시간과 정성이다.

“돈 벌려고 아등바등하면 결국 술 맛이 변하고, 좋은 술은 만들지 못하지요.”

시간의 무게를 쌓아가는 나이테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양조장 주인의 올곧은 품성도 더할 나위 없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세월이 비켜간 듯하다. 건물도 그대로, 사람도 그대로. 그리고 술도 그대로다.

옛날 막걸리 맛을 내는 비결은 손이 많이 가는 전통 주조방식으로 빚는 것인데, 이곳은 50전이나 지금이나 막걸리 만드는 방법이 똑같다. 단지 힘에 부쳐 고두밥을 직접 만들지 못하는 것 외에는.

이런 정성과 노력이 담긴 과정을 거쳐 빚어진 생막걸리의 맛은 다른 막걸리에 비해 진하면서도 숙취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술 마신 다음날 뒤끝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목에 걸림 없이 잘 넘어간다.

“한창 전성기 때는 직원들만 해도 16명이나 됐고, 하루에 200말 가량을 냈지요”

점차 식생활이 바뀌고 읍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물량이 10분의 1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 맛은 아직 그대로란다.


막걸리 공장장 40년
마당에는 막걸리 상자부터 반죽할 때 쓰인다는 이름 모를 기계들이 놓여있다. 언뜻 보기에도 막걸리 냄새가 풍길듯한 분위기다. 안쪽 발효광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독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는데, 독마다 예의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암호 같은 숫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탁사 2호 370, 1964.7.9'. 370은 용량을 말해주는 것이고, '1964.7.9'는 그날 들여온 독이라는 표시란다. 이 표시는 1964년 7월 9일에 독이 입고되었다는 뜻.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술은 50년 전과 똑같은 맛의 '괴산생막걸리' 단한가지. 옛날 할머니께서 명절 때면 안방 구들장 위에 독을 갖다 놓으시고, 며칠 동안 뜸을 들여 발효시켜 담그셨던, 그런 맛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자동식이 아닌 수동으로 일일이 거르고 뜨는 작업으로 완전히 발효시켜 숙성해낸, 그야말로 정성어린 손길이 가득 담겨서가 아닐까.


천직으로 알고 일에 충실
탁주라고도 불리는 막걸리는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 단맛·쓴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이 있는 것이 으뜸. 땀 흘린 농부들의 피로를 덜어주어 농주로서 애용되어 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라면 양조장을 두고 아마 참새 방앗간 못 지나치듯 오갔던 기억이 있을 테고, 그보다 좀 젊은 사람이라면 “얘야 후딱 가서 막걸리 한사발 받아 오거라”라는 어머니 명령이 기억날 것이다.

그러나 변모하는 세월 속에 '동네 부자'라던 양조장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슬금슬금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행복지수도 높아질 터.

이 허름한 양조장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술맛을 지키는 술도가 주인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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