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이기고 소외이웃 돌보는 ‘증평 복지의 산증인’
장애 이기고 소외이웃 돌보는 ‘증평 복지의 산증인’
  • 임현숙
  • 승인 2015.07.2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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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 규 증평 삼보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

30년 전부터 꾸준히 후원·사회복지활동 참여
소외이웃 위해 해결책 모색하는 '열성 봉사자'

▲ 이동규 삼보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이 복지관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이동규 삼보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이 복지관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며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가진 장애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불편한 몸으로 장애를 뛰어넘어 세상에 우뚝 선 사람입니다. 저는 그를 돕는 것이 아니고 그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이동규(64) 사회복지법인 열림재단 삼보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의 아내 허봉금(51) 씨 말이다. 세상에 단 한사람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 여생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든든할까. 지체장애, 청각장애(난청) 2등급으로 세상을 뛰어다니고 있는 이동규 증평 삼보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사회복지 현장으로 들어가다

이동규 위원장은 하루를 36시간으로 사는 사람이다. 새벽 5시 기상해 달달한 모닝커피로 하루를 열고 애마 마티즈를 이용해 가족이 운영하는 고물상 '세기환경공사'로 출근한다. 증평군 재활용협회 회장인 그가 늦은 시간까지 일터에 머물지만 그를 찾는 사람은 일과 관련된 고객들만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보다 상담하는 시간이 더 많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호소를 들어 방법을 찾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난다”는 그는 “그래서 함께 일하는 가족에게는 미안하고 오히려 부족한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감사하다”며 “특히 행정적으로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본격적인 사회복지활동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활동의 시작을 “복지가 뭔지도 모르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당사자로서 그 현장으로 들어가 어떤 상황인지 보자라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그는 그해 3월 증평재활협회를 창립해 1990년에는 회장을 지냈으며 1997년에는 법인으로 지체장애인협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지냈다.

그는 사회복지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신동리 주공아파트 내에 시공사를 설득해 1996년 지역사회 복지관으로 삼보사회복지관을 개관했을 때를 꼽는다. 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삼보사회복지관에 후원활동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그 사각지대에 아직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며 “모두들 힘든 상황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한푼 두푼 후원을 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이웃이 있어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2012년에는 집수리전문가들이 모여 어려운 가정의 집수리를 돕는 정다운 봉사회를 창립시켰고 지금은 고문으로 모든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회원들에게 식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복지활동은 대를 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를 증평 사회복지의 산증인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장희경 삼보사회복지관 부장은 “이 위원장이 본인도 어려운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며 배우는 것이 많다”며 “그는 물질적인 후원은 물론이고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정다운 봉사회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진심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매월 한 번씩 삼보사회복지관 운영회의에 참석해 회원들과 함께 가정문제, 청소년, 정신과상담, 자원봉사, 후원 등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자문하며 운영현황을 확인한다.

그는 “복지 증평은 지역주민과 후원자 ,자원봉사자가 함께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고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 가능한 일”이라며 “사회복지활동은 대를 이어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애 좋은 형제들, 감사하다

“사는데 있어 예의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어릴 적 홍역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됐다. “7남매 형제들이 증평에서 함께 살고 있어 행복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나로 인해 불편을 겪을 때 힘들다”는 그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로 인해 편치 않으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고, 그러나 무엇보다 7년간 야식장사를 하고 낮과 밤을 고생하며 후원활동 해준 아내가 너무 감사하다”며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냈다”고 했다. 그는 또 “상체가 살이 찌면 걷기가 불편해 늘 소식하지만 맛난 음식 앞에서 무너질 때가 있다”며 웃었다. 그 웃음이 편안해 보인다.

정상인으로 단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원 없이 달려보고 싶고, 아내와 함께 나란히 서보고 싶다는 이동규 위원장. 인정받는 사회인으로, 사랑 있는 사회복지활동가로, 두 아들의 든든한 아버지로, 또 존경받는 남편으로 우뚝 선 그가 크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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