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정달훈 씨
소리꾼 정달훈 씨
  • 이승훈
  • 승인 2015.01.28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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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소리 잘하기로 이름 난 어르신

증평장뜰두레농요 맥 잇는 '산증인'
흥과 애환 담은 구성진 소리 '일품'

▲ 소리꾼 정달훈 씨가 두레농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소리꾼 정달훈 씨가 두레농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달훈(84) 씨는 증평지역에서 두레소리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소리꾼이다. 60여 년의 긴 세월이 녹아있는 그의 소리는 사설(辭說 : 민요의 긴 가사를 촘촘히 엮어나가는 노래)이 좋고, 구성져 흥이 절로 돋는다. 그는 긴 호흡의 공연에도 같은 사설을 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는 “선소리꾼은 소리만 잘해서는 안 된다”며 “하루 종일 소리를 하더라도 사설을 다 다르게 부를 수 있어야 진정한 선소리꾼”이라고 했다.

농사일 거들면서 소리와 인연

정 씨는 12남매 가운데 셋째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열네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 농사일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두레에 참여하게 됐고, 소리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풍물두레패에서 상쇄를 맡았던 아버지와 선소리꾼인 외삼촌을 따라다니며 귀동냥으로 소리를 익혔다. 정식으로 소리를 전수 받은 것은 그가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다.

그의 타고난 목구성은 흥을 부추기고, 타고난 끼는 사설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소리를 잘 한다는 소문이 퍼져 인근 부락까지 불려 다녔다.

그는 “내가 소리를 열심히 아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된 농사일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 잠시나마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농기계 보급으로 농요 잊혀져

최근 민요를 일컬음에 있어 노래라는 말보다 소리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반주 없이 육성으로 뽑아내는 진솔한 마음의 소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상황에 맞게 사설과 가락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이 소리의 특성이다.

두레소리도 박자와 사설이 노동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박자에 맞춰 움직이다보면 몸에 흥이 실리고, 비유와 해학이 짙게 배인 사설로 노동의 능률을 높이고 즐거움을 나눴다.

하지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가 근대화되기 시작했다. 농촌에도 기계가 보급돼 농사일을 대신하면서 두레소리는 자리를 잃어갔다.

정 씨는 “소리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었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었다”며 “들판에서 일을 하며 소리를 할 때는 사설이 절로 나와 흥이 났었는데”라고 회상했다. 이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아는 모든 소리를 수기로 작성해 자료로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소리 400여 곡 자료 모아

그가 내민 공책과 서류철에는 그동안 수기로 작성한 소리들과 민요와 관련된 자료들이 담겨있다. 공책에는 상례, 혼례, 가택, 등 다양한 상황에 맞는 소리들을 수기로 빽빽이 써놓았다. 또한, 서류철에는 농요와 관련된 악보나 자료 등 모두 280여 곡을 수집한 게 담겨있다. 모두 합치면 400여 곡이 넘을 거라고 한다.

간혹 대학교수들이 자료가 필요하면 빌려가기도 한단다.

그러던 차에 장뜰두레놀이보존회가 설립돼 두레농요의 맥을 이어가게 됐다. 그는 장뜰두레놀이보존회에 합류해 충청북도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데 한 몫을 했다.

그는 지난 2006년에 장뜰두레놀이가 군지정문화재(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가 장뜰두레놀이가 군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예능보유자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다. 매년 증평읍 남하리 둔덕마을 일원에서 장뜰두레놀이를 중심으로 한 장뜰들노래축제를 개최되고 있다. 그는 “늦게나마 고유민속예술인 소리에 관심을 가져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두레소리 전수하고 싶다”

정 씨는 마지막 꿈이 있다. 국가나 도 지정 농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소리를 전수하고 싶은 것이다.

정 씨는 “내 나이 이제 84살, 마지막으로 내가 가진 모든 소리를 전수하고 싶은데 여건이 맞지 않는다”며 “단순히 보전만 하는 것이 아닌 전수를 통해 발전시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건이 여의치 않아 무형문화재 신청이 몇 년 째 미뤄지고 있어 아쉽다”며 “전문가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만큼 빨리 실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내가 소리를 시작한 지 60여 년이 지났다”며 “소리는 내게 즐거움을 줬고, 나를 빛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욕심일지 모르지만 예능보유자 정달훈 소리꾼이란 소리를 듣고 싶고, 나만의 소리를 전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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