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병호 생가 문화재 안내판 ‘오류투성이’
연병호 생가 문화재 안내판 ‘오류투성이’
  • 이승훈
  • 승인 2014.1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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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비 2개 다른 사람 공적 기록돼 ‘눈살’
충청북도기념물 제122호인 증평군 도안면 석곡리 소재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생가 앞에 있는 문화재 안내판 내용이 오류투성이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또한, 생가 좌측에 설치된 공훈비 3개 가운데 2개의 내용이 잘못 표기돼 개선이 시급하다.

애국지사 연병환·연병호 선생 선양사업회(이하 선양사업회)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연병호 선생 생가에 대한 설명과 업적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는 문화재 안내판에 잘못 표기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내판에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표기해야 하지만 '상해임시정부'로 표기돼 있으며, '대한민국청년외교단'도 '청년외교단'으로 기록돼 있다.

'(선생이) 1921년 다시 중국으로 망명해 북경에서 '독립혁명당'을 조직했으며'라고 기록돼 있으나 이 단체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확인이 불가능한 단체라고 했다.

또한, '1937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조선총독부로 인계된 후 8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과 공주감옥 등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선양사업회가 지난해 1월 발간한 '애국지사 연병환·연병호 전기'에 보면 '(선생은) 한국혁명당과 신한독립당 조직과 관련해 체포돼 1937년 12월 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경성복심원 2심 재판에서 징역 6년으로 감형됐고, 복역은 공주감옥에서 했다'고 기술돼 있다. 따라서 문화재 안내판과 저서에 수록된 내용이 많아 다르다.

이밖에도 '제헌의원 시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관철시켰다'고 기록된 것에 대해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지난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의결해 채택됐으며, 광복된 후 지난 1948년 제헌국회에서 표결을 통해 결정됐기 때문에 문화재 안내판에 기록된 문장이 부분적으로 미화됐다”고 했다.

또한, '정부의 그의 공훈을 높이 사 그해 3월 1일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고 기록된 것에 대해 “문법 상 오류와 '건국훈장 국민장'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생가 좌측에 나란히 설치된 공훈비 3개 가운데 2개가 아예 다른 사람의 공적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연병환 선생 공훈비에는 함경북도 갑산 출신 독립운동가 연병우 선생의 공적이 기록돼 있다. 이는 연병환 선행의 초명이 연병우 여서 동명이인으로 인해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다른 공훈비의 경우는 연병환 선생의 둘째 동생인 독립운동가 연병주 선생의 공적이 연병환 선생의 공적으로 둔갑해 있다.

이에 대해 증평군 관계자는 “군에서도 올해 초 문제점을 확인했다”며 “충청북도문화재위원회에 '문화재 현상변경'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고, 예산도 세워 정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초 계획보다 정비가 미뤄진 것은 연병호 항일역사공원 조성 사업과 연계돼 이중으로 예산이 소모될 우려가 있어 계획을 조정하다보니 시간이 다소 지체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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