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갑 ‘꿈꾸는 가야금’ 공방 대표
최병갑 ‘꿈꾸는 가야금’ 공방 대표
  • 신도성
  • 승인 2014.09.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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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가장 큰 목탁 만든 종이공예가

한지 10만장 들여 6년동안 작업…무게만 1톤
“세계유기농엑스포서 공개, 괴산 홍보 하고파”

▲ 최병갑 씨가 거대한 종이 매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병갑 씨가 거대한 종이 매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년동안 돌탑을 쌓는 심정으로 목탁을 만들었습니다”
불교신자도 아닌 최병갑(64)씨가 6년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종이목탁(紙鐸) 제작에 몰두한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 작품은 무게가 1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다.

죄없는 징역살이

그는 한국전력을 퇴사하고 음성에서 휴게소를 경영하던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고소장이 날아든다. 부지 매도와 관련, 상대방에서 사기혐의로 고소를 한 것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청천병력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와 아내 그리고 두아들은 패닉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검찰조사를 거쳐 수감된다.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거기서도 유죄가 확정됐다.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대법원에 항소했다.
과연 '사회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좌절했고, 목숨을 버려서라도 결백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상상도 못할 고통 속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결국 구속 400일 만에 대법원 무죄 판결로 풀려났다.

'꿈꾸는 가야금' 공방 차려
무죄는 확인됐지만 정신 상태는 피폐해졌다. 힐링이 필요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신선이 내려와 노닐 것 같은 연풍면 금대마을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다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이상향을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국도 개울가에 부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름을 붙였다. 이름하여 선인금(仙人琴).

마음의 평화 얻기 위해 몰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목탁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 연풍이 한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썩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사찰에 들렀을 때 청아하게 들리던 목탁소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세상사 모든 일을 잊기 위해 목탁 만들기에 몰두했다. 6년 동안 마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듯이 그렇게 매달렸다.
“모두들 무모하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만드는 시간만큼은 몰두할 수 있었고, 마음의 평정을 찾았으니까요.”
목탁 만들기에 몰두하는 남편을 아내 김순일 씨는 6년 동안 묵묵히 지켜봤다.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될까 싶어 묵묵히 지켜봤다”며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 더욱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높이 3.4m '초대형 작품'

그가 제작한 종이목탁은 무게가 1t 남짓하고, 높이 3.4m, 둘레 6.7m에 달한다. 목탁채의 길이만도 3.3m에 이른다.
마지막 단계인 옻칠만을 남겨놓고 있다. 한지만도 10만 8000여장이 들어갔다. 무게는 800㎏, 여기에다 접착 풀 무게까지 합치면 1000㎏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표면 옻칠만 마치면 완성된다”면서 “한지공예의 역작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옻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올 겨울 그 기법을 배울 예정이라고 했다. 이 종이목탁은 어느새 괴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완성되면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종이공예로 고려청자를 재현하기로 했다. 틈틈이 매병 두개를 만들었다. 하나는 합지로, 또 하나는 순수 한지로 만들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매병 역시 높이 1.9m, 둘레 4.1m의 초대형작품이다.

“유기농엑스포장에 진열하고 싶어”
그는 요즘 일명 복항아리를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다. 3x5㎝ 크기의 종이조각 2000개를 조형적으로 이어붙여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이 공예품은 괴산의 새로운 특산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서 이들 작품을 공개하고 싶다”며 “괴산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작업에만 몰두하면서 도인이 됐다”며 “증오심도 분노도 모두 목탁 속에 녹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도를 닦는 심정으로 몰두한 10년 세월. 그는 이제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고, 용서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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