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장 임인호
금속활자장 임인호
  • 신도성
  • 승인 2014.04.11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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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복원시킨 ‘장인’

내년 말 3만 2000여 자 복원 마무리
“입체적이고 정교한 밀랍주조법 적용”

▲ 임 장인이 어미자가 붙은 밀납봉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 임 장인이 어미자가 붙은 밀납봉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괴산군 연풍은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전통한지박물관과 마애석불좌상이 있고, 김홍도 발자취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금속활자 장인 임인호(52) 씨도 여기에 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인쇄한 금속활자를 복원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를 활자주조공방 '무설조각실'에서 만났다.

활자주조공방 '무설조각실'
무설(無說)은 '묵묵히 정진해 경지에 이르라'는 의미로 스승이 지어준 그의 아호다. '무설조각실'은 한지박물관에서 수옥정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마애석불좌상 인근에 있다. 중요무형문화재의 공방치고는 소박하다. 흔한 상장이나 표창장도 없다. 그를 소개한 코팅된 신문기사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이다. 그것도 주민이 준 것이다.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직지심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직지심체란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승려들의 수행과 공부를 위한 학습서다. 직지가 주목받는 것은 이 책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점 때문이다. 고려 우왕 때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 지정
활자 새기는 일은 고향에 와서 오국진 선생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였던 스승 고 오국진 씨는 금속활자주조 분야의 대가였다. 그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10여년 동안 스승 밑에서 금속활자 복원 기술을 익히는데 몰두했다. 스승 타계 후인 지난 2009년 중요무형문화재 101호 금속활자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는 스승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했다.

스승의 빈자리가 컸지만, 밀랍주조법으로 직지 금속활자 복원에 성공하면서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로 4년째 '직지'를 복원하고 하고 있다.

3만 2000여 자 중 2만여 자 복원
'직지'는 상하권 모두 3만 2000여자의 글자로 돼 있다. 현재까지 하권 38판을 포함해 모두 45판을 복원했으며, 내년 말까지 78판 전부를 복원, '직지' 금속활자 복원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직지' 금속활자본 복원은 밀랍주조법으로 이뤄졌다.

밀랍주조법은 밀랍대에 글자본 붙이기-어미자 만들기(글자 양각)-밀랍봉에 어미자 붙이기-거푸집 만들기-가마에서 가열해 밀랍 녹이기-거푸집에 쇳물 붓기-거푸집 깨뜨려 활자 다듬기-조판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하권 1만 5000여자를 복원하는데 들어간 밀랍이 500kg을 넘는다. 활자를 만드는데 쓰인 쇠는 그보다 더 많다.

그는 손기술이 노련해야 하고 어느 한 공정이라도 방심하면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금속활자주조전수관 위탁운영
“연풍에 있는 조각실 공간이 협소한데다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 청주 고인쇄박물관 부근에 건립된 금속활자주조전수관이다. 지난해 9월에 문을 연 이 전수관은 임 활자장을 위한 공간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청주시에서 42억여 원을 들여 지은 건물로 그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전수관은 직지 체험, 금속활자 만들기 체험, 금속활자 주조 시연을 하는 체험실과 직지 복원 등 금속활자장 기능 보전과 금속활자 주조 전수법 전승을 위한 전수실 등으로 꾸며졌다.

“전수관 작업환경이 좋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외부적 요인을 걱정할 필요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면 되니까요.”

'시골에서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좋아 연풍을 떠나지 못한다'는 그는 목판 인쇄본을 금속활자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아들이 내년 대학을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비법을 전수할 생각이다.

아들에게 계승시킬 생각
직지 금속활자본은 유일하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남아있는 희귀본. 그것도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고 박병선 박사의 눈에 띄어 빛을 보게 되었다.

고려시대 '직지'를 제작했던 방식으로 추정되는 밀랍주조법으로 활자를 복원해 학계를 놀라게 했던 장인 임인호. 그는 목판본만 남아 있는 상권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금속활자로 복원할 계획이다.

그는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복원한다는 긍지를 갖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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