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가수 이성원
동요가수 이성원
  • 신도성
  • 승인 2014.04.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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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무대와 거리 둔 ‘대중음악계의 이단아’

곽성삼, 김두수와 '80년대 3대 포크가수'
괴산군 청안면에 황토집 보금자리 마련

▲ 한옥계단에서 포즈를 취한 이성원씨. 우리나라 '찾아가는 콘서트' 원조가수다.
▲ 한옥계단에서 포즈를 취한 이성원씨. 우리나라
이성원은 쉰을 넘긴 나이에 동요를 부르는 가수이다.1980년대 3대 언더 포크가수로 인정받던 아티스트.그는 포크로 출발해 국악, 민요, 동요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노래해 왔다.손쉬운 일터인 밤무대와는 거리를 두고, 그저 자신의 노래를 듣기 원하는, 돈 안 되는 무대를 찾아 나서는 별난 사람.밤무대에 서 본 적이 없는 '대중음악계의 이단아'다.

노래 들을수록 빠져들어
그의 노래는 부드러운 온수처럼 젖어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고 다정스럽게….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그가 부르는 '진주 난봉가'는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웬지모를 가스떨림이 일었다. 노래가 끝날쯤 함께 듣던 청안초학부모회장은 눈가를 훔쳤다. '이런 사람이니깐 동요를 부를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가요칼럼니스트는 이성원 노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잊혀진 어릴 적 추억과 다정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되살려놓는 마력을 지녔다. 똑같은 동요도 그가 부르면 가슴이 시려온다”

어른들의 심금 울리는 동요
이성원은 1961년 경남 진해에서 신문기자를 아버지로 둔 1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부친은 당시엔 갖기 어려웠던 전축을 갖춰놓고 흑인 음악을 즐겼다. 윤택한 집안의 외아들 이성원이 음악의 달콤함에 빠진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자 집안은 어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만도 기적이었다.고교 3학년 때 우연히 접한 통기타는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다. 통기타를 끼고 살았다.

“바람에 부대끼는 뒷산 대숲의 울음 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음에 대한 천부적인 감을 타고난듯 했다.

고등학교·졸업 후 배달원으로 일했다. 우유 배달 중에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면 우유를 거저 나눠주고, 신문 배달할 때는 10여명의 불량배들과 한판 대결을 벌였을 만큼 정 많고 의협심 넘치는 청년이었다.

1981년 회사에서 전국의 직원을 대상으로 노래자랑대회를 열자 1등을 해 그 상금으로 빚진 우유 값을 갚고 나왔다.

가수되려고 무작정 상경
결국 가수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을 했다.가수 등용문이던 명동 '쉘브르'의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해 '태양은 빛나는데'를 불렀지만 떨어졌다.

무명 통기타 가수로 소일하다 이화여대 정문 앞에 `쉼표'라는 카페를 열었다.마음껏 노래하며 친구들도 사귀었다.그는 당시를 `내가 무엇을 노래해야 되는지에 대해 답을 얻었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가락을 포크와 접목하는 음악실험에 몰입한다. 즉흥 창작곡에도 빠져들었다.

생활에서 느끼는 느낌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자 '우리 가락은 자연과의 교감이 가능하다'는 가슴 뻐근한 감동이 밀려왔다.

신비로운 경험은 더욱 자유로운 음악 날갯짓을 부채질해 2집을 발간했다. '나무밑에서'는 자신의 음악색깔을 고스란히 담은 음반이다.그 후 골수팬들이 생겨 지금까지 후원해 주고 있다.

“3대가 함께하는 콘서트 하고 싶어”
그는 사석에서 노래할 땐 언제나 동요를 부른다.동요집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에 수록된 티없이 맑고 시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클레멘타인'은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강원도 추곡초교의 전교생 29명이 풍금 반주에 맞춰 함께 부른 노래 '따오기'는 감동을 더해준다.

그는 공연장에서 철저하게 청중들과 함께 호흡한다. 즉석 합동 공연을 갖기도 하고, 합창도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느끼는 교감에 만족할 뿐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노래 사람 이성원과 함께하는 겨울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회를 찾은 학부모와 자녀에게 들려주고 함께 부른 동요에 반응은 뜨거웠고 서로 공감했다. 숲속웨딩공원에서 열린 이 작은 음악회는 지역사회의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순수 간직한 삶 추구
2010년 괴산군 청안면 읍내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외모에 구수한 말씨는 여느 시골 마을 아저씨와 다름없다.

“느티나무 아래서 기타를 잡으면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시골 정취에 매료된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들이 함께 와서 소박한 공연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변되던 시절, 포크 가수로 인기를 모았던 한 아티스트는 중년의 나이에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느티울에서 욕심없이 살고 있다. 정신이 맑아지는 향기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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