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장 유필무
필장 유필무
  • 이승훈
  • 승인 2014.03.17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 붓 만들기 외길 걸어 온 ‘붓쟁이’
▲ 유필무 필장이 필관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는 듯 전통문양을 새기고 있다.
▲ 유필무 필장이 필관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는 듯 전통문양을 새기고 있다.
필장 유필무(54). 그에게서 한 자루의 붓이 나오기까지 닿는 손길은 수백, 수천 번에 이른다. 손놀림의 고단함 끝에 붓 한 촉이 자태를 드러낸다. 고단하고 외로운 시간이 깃들어 있는 붓. 그 끝에 먹이 배어들고, 종이에 스며드는 획 속마다 인간사가 있고, 자연이 담긴다. 그렇게 붓은 도구를 넘어 예술작품이 됐다.

16살에 붓과 첫 인연
그는 충주 앙성 출신으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위고 생활고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했다. 이름도 없이 '꼬마'로 불리며 뚝섬의 영세 가발공장에서 일을 하던 그는 운명의 이끌림으로 붓 공방에 입문했다. 처음 그곳에 들어섰을 때의 열기를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이제껏 해왔던 일들과는 달라보였다. 이 일을 배우면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귀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그때 나이 16세. 그렇게 맺어진 붓과의 인연이 벌써 40여년이 다 돼 가고 있다.

초필(草筆) 전통을 되살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붓은 주로 동물의 털로 만드는 모필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서민적인 한국의 전통공예를 재현해냈다. 초필(草筆). 과거 문헌에 기록은 남아 있지만, 현대에 와서 그 맥이 끊겨버린 작품이다.

초필은 띠풀, 개나리새, 종려나무, 억새, 칡(갈필), 볏짚(고필) 등의 식물성 재료로 만든 붓이다. 이 초필의 재현은 그만의 독보적인 업적이다. 그는 볏짚과 칡을 이용한 고필과 갈필을 주로 만든다. 재료를 미지근한 물에 찌고, 그늘에서 말리는 작업을 아홉 번 반복해야 한다.
질긴 칡뿌리로 만드는 갈필(葛筆)은 1만 5000번 이상을 두들겨야 붓 한 자루가 나온다. 그것도 10개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붓 한 자루를 건질 수 있다. 보통 2~3개월이 걸리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초필인 것이다. 지난 1995년에 완성한 갈필은 이듬해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해 주목 받았다. 그렇게 '유필무'라는 필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흔한 재료로 귀하게 만든다면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지천에 널려 있는 흔한 것들, 나고 스러지고 삭아 없어지는 것들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

전통에 현대적 아름다움 더해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붓을 공예품으로써 가치를 높이는 것. 그는 현대적 디자인의 개념을 붓에 도입해, 예술품으로서 붓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로 붓 자루인 '필관'을 꾸며, 한국의 멋을 구현한 것.

지난 1999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특선을 수상한 '비단길'이 대표적이다. 총 21자루로, 각 붓의 머리 부분에 용비어천가의 구절을 원문으로 써 넣었다. 거기다 은 견사로 붓대를 치장해 예술적 가치를 높였다. 그렇게 그는 필관에 전통문양이나 좋은 시나 글귀를 각을 해 한국적인 색체를 입히고, 비단실을 일일이 감아 전통의 멋스러움을 담아냈다.

“내가 매는 붓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을 하고, 치밀하고 내면의 영혼을 다 바쳐 완성시킨다. 그것이 나의 붓이다.”

붓은 쓰임을 통해 완성
그의 작품은 강한 자부심만큼이나 특별하다.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칼을 이용한 태모필도 처음 선보였고, 초필이나, 예술품처럼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붓의 본질을 잊지는 않는다. 그는 붓을 다 매면 두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먹을 갈아 시필을 해 본다. 이를 위해 서예를 배웠다.

“어렸을 때는 그저 붓을 매기에도 벅찼지만, 내 이름을 걸고 붓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붓의 쓰임과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다. 붓이란 만드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것을 사용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란 것을 알게된 것이다.”

필무산방 개원
그가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에 정착한지 이제 4년이 됐다. 공방은 따로 없었다. 그의 집 안방,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놀이를 하는 곳 방 한 켠이 그의 공방이었다. 그의 사정을 안타까워하던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에게도 공방이 생겼다. 지난 8일 개원한 '필무산방'. 이제 이곳에서 '유필무의 붓'이 만들어진다.

“항상 느리기만 한 나를 위해 손 내밀어 준 나의 친구.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한 나를 걱정하며 챙겨주는 지인들. 부족하지만 내 작품들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의 버팀목이 돼주는 나의 아이들과 안사람 그리고 가족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는 행복하다. 공방 입구에 붙여진 글귀처럼. '볕이 따스하니 마음이 춤춘다. 절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