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읍 감물식당
괴산읍 감물식당
  • 신도성
  • 승인 2014.09.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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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이어 온 전통 ‘반세기’… 기능장급 장인정신

장인정신으로 만드는 한결 같은 맛…“고기 삶는 법은 따라올 수 없어”
대파 주재료로 사용 절묘한 맛 살려…잡냄새 없고 얼큰하면서도 감칠맛
보신탕 한그릇 100원에서 1만원으로…지역주민과 애환 함께한 산 증인

▲ 온갖 풍상 헤치며 앞만 보고 달려 온 한평생을 되돌아보는 백 대표. 자부심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먼산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는 회한이 담겨있었다.
▲ 온갖 풍상 헤치며 앞만 보고 달려 온 한평생을 되돌아보는 백 대표. 자부심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먼산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는 회한이 담겨있었다.
보신탕은 삼계탕, 오리고기, 장어, 추어탕 등과 함께 우리나라 5대 보양식으로 꼽히는 전통음식이다.
예로부터 보신탕은 '개장국'이라 불리며 우리 민족의 대표 보양식으로 손꼽혔다.
허해진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서 먹는 보양식으로 오랫동안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개고기는 궁중에서도 '3품'으로 대접받던 보양식품이었다. 동의보감에는 혈맥을 조절하고 기력을 증진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 조상의 식용문화를 보면 개는 견(犬)과 구(拘)로 구별했다. 식용 개는 황구, 백구 등 구(拘)라는 단어를 사용해 사냥견, 애완견 등과 차별을 두었다.

4계절 전통보신탕집
보신탕은 영양탕, 사철탕, 토속탕, 개장국…이름도 많다.
개고기 식용 찬반 논란과 무관하게 중장년층의 마니아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보신탕 시장 규모는 연간 6000억 원에 달한다.
30여년 전 88올림픽을 앞두고 보신탕집은 간판을 내리고 시내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농촌지역으로 옮겨갔다. 개고기를 즐기던 이들은 간첩(?) 접선하듯 단골집을 찾아야 했다. 아무리 막고 이름을 바꾸어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용케 찾아갔다.
어떤 보신탕집에서는 “그저 계속합니다”라는 웃지못할 간판을 내걸어 손님에게 알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감물식당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식당이다. 50년 동안 한결같은 맛을 이어오는 4계절 전통보신탕집. 그것도 반세기를 한사람의 '보신탕 기능장급' 솜씨로…주방장도 겸하고 있는 백복순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한평생을 받친 장인의 손맛에서 우러나오는 보신탕 맛으로 유명하다. 식도락가들이 백리를 마다 않고 찾아올 만큼 솜씨가 빼어나다. 고기 삶는 방식에 남다른 노하우를 지니고 있어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다. 또한 백 대표만 아는 비법으로 요리, 국물이 잡냄새가 전혀 없고 얼큰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다.
'내가 먹는다'는 신념으로 정성껏 만들기 때문에 양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또 그날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 당일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요인이 오랜 세월 한결 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재료 선정부터 철저함을 지킨다
감물식당의 주메뉴는 보신탕이다. 메뉴는 탕과 전골 단 두가지다. 일단 먹어보면 중독되는 수준이다.
8시간 끓인 육수에 고기와 대파·고추장·된장 등을 넣은 보신탕 맛은 일품이다. 살과 껍질이 붙은 살은 부드러워 녹는 듯하고, 껍질은 미끈거리지 않고 쫀득하다. 다음날 판매할 개고기는 전날 밤새워 삶는다.
백 대표는 “당일 삶은 것이 아니면 손으로 찢기 힘들다”며 “고기를 손으로 찢어 넣으면 손맛이 난다”고 말했다.
보신탕 참맛은 국물 맛이고, 그 비법은 여러 가지 부재료를 넣지 않고 대파 등 두어가지의 부재료로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개고기는 농장에서 청결하게 식용으로 사육되어 전문 도축시설에서 도축된 마리당 25kg 내외의 것을 주로 쓴다.
“1년내지 1년 반 자란 국산 황구를 주로 씁니다”

전날 가마솥에서 밤새 삶아
▲ 50년을 이어온 감물식당 전경. 집앞의 자동차는 올해 운전면허를 취득한 백 대표의 애마다.
▲ 50년을 이어온 감물식당 전경. 집앞의 자동차는 올해 운전면허를 취득한 백 대표의 애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고기 손질을 직접 깔끔하게 하고 직접 담근 토종된장과 신선한 야채를 사용한다. 모든 재료는 괴산에서 나는 것을 사용한다.
건물은 허름하지만 수십년 단골이 많다. 2대에 걸친 단골도 수두룩하다. 도시로 나간 사람들도 고향을 찾으면 노부모 모시고 이곳을 찾는다. 먼 곳에서 소문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도 부지기수다.
청주에서 왔다는 S(52) 씨는 “다른 식당에서는 이런 맛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감물식당은 50여년간 많은 지역사회의 정치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해 왔다.
“국회의원, 도지사, 군수, 사회단체장들도 우리 집에 자주 들렀습니다”
20년 단골이라는 K(67) 씨는 “후배와 마주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던 추억의 장소”라고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무형문화재급”
감물식당은 1960년대 중반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식당이다.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식당 문을 열었지요”
그가 처음 식당 문을 열 때는 보신탕 한그릇에 100원이었다. 지금은 10000원. 50년 동안 100배가 올랐다. 보신탕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듯하다
이제 일흔을 넘긴 백복순 대표는 그렇게 50년을 혼자 운영해 왔다. 평생을 정직과 의리로 살아온 인물이다. 직선적인 성격과 다르게 인정이 있는 따뜻한 사람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대로 남모르게 선행을 베풀어왔다.
수년간 매달 한번씩 지원금을 들고 찾았던 꽃동네의 어떤 장애인은 백 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반듯한' 학생들에게도 남모르게 학자금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남편과 사별 후 모진 풍파를 홀로 이겨내고 자식 뒷바라지했고, 어려운 이웃도 도와왔던 것이다.
그의 가장 열렬한 팬은 손녀다. C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상희 양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할머니'라며 “음식 맛으로 치면 우리 할머니는 무형문화재급”이라며 웃었다.
이 식당은 비공인 전국 최고의 맛집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전국의 내노라는 유명한 식당 중에서 'no 1'으로 선택된 것이다.
“10여년 전 어떤 젊은이가 찾아와 식당을 열 계획인데 도와달라는 거예요. 3번이나 찾아와 통사정을 했어요. 전국의 유명한 집을 모두 다녀봤는데 감물식당 보신탕이 최고라면서…”
그 젊은이는 식당으로 성공해 건물을 매입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백복순 대표는 요즘 마음은 무겁다.
그는 “나이가 들어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식당 그만두면 가족 같은 단골고객들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온갖 풍상 온전히 처절하게 온 몸으로 받아 넘기며 살아 온 그의 한마디가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직/격/인/터/뷰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살아온 한평생

-주메뉴가 보신탕이다.
“개고기는 국물 맛이 제격이지요. 값도 수육에 비해서 저렴하고요. 국물 맛을 내는데 자신이 있다보니…탕이 전체 매출의 80%정도 됩니다”
-보신탕이 몸에 좋다던데…
“개고기는 혈맥을 조절하고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합니다. 기진맥진하던 농부도 한 그릇 먹으면 힘이 솟는다고 해요. 의사도 수술 환자에게 권하지 않습니까?”
-맛을 내는 비법은 무엇인가?
다음날 판매할 고기를 대파, 된장, 고추장 등을 넣고 전날 밤새워 삶지요. 그러니 국물이 진하고 깊은 맛이 나지요. 그리고 대파를 적당량 사용합니다. 그리고 직접 담근 묵은 된장을 씁니다.
-상차림에 마늘이 없다.
“보신탕은 열이 많은 음식이고, 마늘도 열이 많아 같이 먹으면 열이 지나쳐 오히려 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신 양파를 곁들여 내놓지요.”
-전통을 이을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자식들이 물려받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문 닫자니 아깝고 아쉽습니다. 어쩌겠어요. 되는대로 해야지. 어쩌면 추억 속으로 사라질지도…”

글·사진 = 신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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