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영 괴산증평축협 상무
권오영 괴산증평축협 상무
  • 신도성
  • 승인 2013.05.3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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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편견 깨뜨린 외유내강형 ‘파워우먼’

가족봉사모임 만들어 소외된 이웃 돌봐
괴산군 농 · 축협 최초 · 최연소 여성임원

여고시절이나 지금이나 반듯함은 변치 않았다. “시를 암송하는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권오영 상무는 2011년에 중원대학교 CEO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동기모임 총무를 맡고 있다.
여고시절이나 지금이나 반듯함은 변치 않았다. “시를 암송하는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권오영 상무는 2011년에 중원대학교 CEO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동기모임 총무를 맡고 있다.
25년전 가을, 교정의 플라타너스 잎이 낙엽되어 뒹굴던 어느 날, 취업 지도 선생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리곤 한 여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단정하고 반듯하며 공부도 꽤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권오영이었다.
“협동조합에서 추천 의뢰가 왔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어디서 근무하는데요?” “괴산축협 이란다.” “네, 선생님 가겠습니다.” 그 여학생은 그렇게 축산업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었다.

◆교장 추천 받아 괴산축협 입사
맡은 일은 증평지소 창구 업무였다. 옷매무새 단정하고 새침하면서도 상냥한 그녀는 '똑 소리'나는 업무처리로 칭찬 받으며 일했다. 집에서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여대생이 된 친구를 보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대신 책 읽는 것으로 허전함을 메웠다. 집안형편을 생각해 진작부터 취업하리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겼다. 10여 년 전에 그녀가 그랬듯이 여고를 갓 졸업한 후배도 생겼다.
나이 서른을 넘길 즈음 어느 순간 뭔가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내가 이 자리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 것인가. 왜 여자는 창구직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정당하게 승진시험에 합격한다면 여자라고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여직원은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사직하는 것이 통상적인 시절이었다.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회 통념을 깨고 싶었다. 일을 잘 할 자신도 있었다. 그녀는 혼자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공부를 해서 승진 시험을 치겠다고.

◆충북 최초의 최연소 농협과장
시험과목은 농협법·협동조합론·회계실무·신용실무·경제실무 등 5과목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공부를 시작했다. 7살 딸과 세 살배기 아들을 초저녁에 재우고 거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물론 힘들었다. 직장생활하면서 살림하며 아이 키우며 공부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주경야독이라고 할까? 피로가 누적돼 심한 몸살에 걸리기도 했고, 코피를 쏟은 적도 있었다. 밑반찬은 친정어머니께 신세를 졌고. 반찬 가짓수도 반으로 줄였다. 시간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학교졸업한지 10년이 훨씬 지났잖아요. 생각처럼 안 되는 거예요. 첫해 응시 후 결과를 보고 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다고 생각했어요.”

다음해 그렇게 1년을 버티었다. 결과는 승진대상자 8명 중에서 1등이었다. 이렇게 해서 충북도내 축산업협동조합 최초의 최연소 과장이 됐다. 2년 후 상무로 승진을 하며 괴산군 농·축협 최초의 여성임원이 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6세. 아가씨 같은 임원이었던 것이다. 그의 승진은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승진을 하니까 무척 기뻤지요. 뜻한 바를 이루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동료와 선배들을 제치고 관리자가 되니 주위의 시선이 너무 따갑고, 마치 뒤에서 쑤근대는 것 같은 느낌. 아무튼 무척 부담스럽고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았어요.”

◆승진 후 너무 힘들어 사직 고려
그는 승진 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사직할까도 생각했었다고 했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색채가 농후한 지역사회에서 그 분위기를 깨뜨리기가 어려웠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료였던 사람들이 거리감을 두는 것이 힘들었고, 선배였던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은 업무추진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일체유심조(切唯心造)'를 플래너에 적어 지니고 다녔고, 너무 힘들어서 주말마다 혼자 등산을 다녔어요. 주말에 재충전해서 일주일을 버티는 일이 반복됐지요.”

그는 등산을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이 쌓여 내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려움을 합리적인 판단과 친절함 냉정함으로 메웠다. 그리고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 과분하게 받은 것인 만큼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봉사를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30대 중반의 나이에 주성대학교 청소년문화복지학과에 진학했다.

◆가족봉사모임 만들어 봉사활동
배움은 체질에도 맞고 즐거운 일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맑아졌다. 학과의 이수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다. 졸업 후 학과에서 만난 마음 맞는 학우 4명이 의기투합해 가족봉사단도 만들었다. 이름 하여 마당가족봉사모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미 있는 모임이다. 장애우 생활시설인 청천재활원에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봉사활동을 간다. 진심으로 그들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후원자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재활원 가는 것을 꺼렸어요. 4년이 지난 지금은 그 친구들과 아주 잘 어울려요. 저희 가족이 장애우들에게 베푼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은 것 같아요.“

괴산증평축협은 상호대출금이 650억여 원, 예수금은 750억여 원으로 지역민과 함께 하는 협동조합이다. 지난 2000년 7월 1일 농협으로 통합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축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지역과 상생하는 금융기관으로 정착했다.
농촌지역사회에서 농협의 역할은 실로 중대하다. 농업인의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권오영 상무 같은 이들이 계속 탄생한다면 지역발전은 가속화될 것이고, 지역사회는 더 활기찰 것이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듯하다. 신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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