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숙 한국여성농업인 괴산군연합회장
이명숙 한국여성농업인 괴산군연합회장
  • 신도성
  • 승인 2013.02.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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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人3役 훌륭히 해내는 '연풍 스타'

이명숙 회장은 눈 내리는 날인데도 '내집처럼 편안하다'는 괴산군농업기술센터를 찾았다.
이명숙 회장은 눈 내리는 날인데도
스물한살의 시골 아가씨는 주위 어른들의 권유로 동네 4-H에 회원으로 가입한다. 홍일점이었다. 칭찬과 부추김에 넘어가 본의 아니게 사회활동에 발을 담근 것. 음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수신용협동조합에 근무하던 이명숙의 스토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음성중학교 전교 부회장을 지냈던 그는 활달한 성격과 붙임성,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두각을 나타낸다. 여성의 프리미엄이 얹혀지기는 했지만. 가입한지 1년 만에 소수면 수석부회장이 되고, 그 후 2년 만에 괴산군 수석부회장이 됐다. 그리고 스물다섯 나이에 사회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연풍 청년과 결혼한다.

그의 사회활동은 결혼 후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아이를 업고 걸리면서까지 생활개선회, 한여농 등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댁 식구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1994년 농촌진흥청에서 설립한 사단법인 생활개선회의 취지는 평소 그가 품고 있던 생각과 거의 일치했다. '농촌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 누군가는 해야 했고, 자신에게도 피부에 와 닿는 문제였다.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30대 중반의 많지 않은 나이에 연풍면 생활개선회장이 됐다.

◆연풍면 생활개선회장 맡은 '젊은 새댁'

“한번은 생활개선회에서 꽃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면민들뿐 아니라 군에서도 손님들이 많이 오셨거든요. 그 자리에 시부모님도 모시고 갔어요. 그 행사를 보신 뒤로 시부모님들께서 저의 사회활동을 이해하시고 격려해주시게 됐어요"

그는 남편이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민후계자여서 자연스럽게 '96년도에 설립된 한국여성농업인(이하 한여농) 활동을 하게 된다. 한여농 활동은 비지니스와도 연결이 가능했다. 과수원 사과 따기 체험 등의 도농교류사업 등은 구미를 당기는 일이었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업기술센터에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이들이 그곳을 '엄마학교'라고 부를 정도였다. 농업기술센터 친환경농업대학과정을 마쳤으니 학교는 학교인 셈이다.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아이 둘 키우고, 7500평의 과수원 사과농사 짓는 일이 힘겨웠을 터인데 사회활동을 접지 않은 까닭은 무었일까.

“그냥 그럭저럭 살기에는 젊음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고, 보람을 찾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지요. 그리고 농산물 유통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구요. 배워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어요.“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어 사과 직거래

그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로 열심히 10년 이상 시골생활을 한 그였지만,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쯤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다.“아이들 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면 농촌을 뜨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이 나기도 했고,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던 때 였어요”

나이 40을 바라볼 어느 즈음의 가을날, 마을 뒷산인 덕가산을 바라보게 된다. 눈 뜨면 날마다 마주하는 산이었고, 예년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을 테지만, 그날따라 단풍으로 물든 산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울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이 아름다운 고장에서 평생토록 살리라'다짐한다. 그리고 괴산군의 추천을 받아 건국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했다. 재도약을 위한 시발점이었다. 동시에 '악휘산 사과농장'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과 직거래를 추진했다. 사과 친환경 인증도 받았다. 더불어 사과 따기 농장체험도 시작했고, 대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한 뒤로 소득이 20% 이상 증가했다. 연풍지역은 조령산 밑이라 일교차가 커 사과나 감 등 과일이 당도가 높다. 친환경에다 맛도 좋으니 직거래 고객은 충성도가 높았다.

온라인 판매와 연관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몇 년 전이예요. 부모님께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셨어요. 보통 밭떼기로 넘기셨는데, 그 해에는 3000평 옥수수밭이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시부모님 걱정이 크셨지요. 그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 고객들에게 알렸지요. 온라인 판매로 일주일 만에 모두 판매했어요”

그는 그 일로 인해 '연풍스타'로 떠올랐다. 주민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능력있는 며느리로 재평가(?)되는 경사를 맞기도. 시어머니는 일곱 형제자매 식구들 모두를 불러 모아 중대발표를 했고,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던 것. 인터넷의 힘이었고, 사과를 구입한 고객들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은 기적이었다.

◆전국에 직거래 고객만 2000명 넘어

그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연풍솔지네농원'의 직거래 고객은 2000명을 넘는다. 직거래 고정 고객 중에는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일신주택, 유진건설, 하이퍼테크 등 기관단체만도 50여 곳에 이른다.

이 회장은 연풍면 새마을부녀회장도 맡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간단한 영어도 가르쳐 드린다. 40∼50대 청년회원들에게는 컴퓨터 사용법, 홈페이지 활용법도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그의 집 거실은 마을 상시 교육장이다. 요즘은 농지 주변의 빈 농약병 수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경보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될 일이기에 마을 주민들에게 호소했다. 80여 가구의 주민들이 모두 호응을 해줘 고맙다고 했다.

그의 끊임없는 봉사활동과 고향사랑은'상복 터진 여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충북도지사 표창 등 상장만 7개에 이른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상은 작년에 받은 '자랑스런 도민상'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왔다'는 인정서인 것 같아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가전제품 행운권으로 자동차를 탔는데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고 쿨하게 인정한다.

그는 지난 5일 제10대 한국여성농업인 괴산군연합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엄익희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경헌자·함청희·조순희 등 훌륭한 부회장들이 도와주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고 했다. "제가 인복이 많은 가봐요"라며 밝게 웃는 그에게서 '섬김의 리더십'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지혜로운 며느리로, 온라인 마케터로, 적극적인 사회활동가로 살아왔고, 살아갈 이명숙 회장. '연풍의 스타'라는 닉네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신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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