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증평군협의회장 최성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증평군협의회장 최성균
  • 나영순
  • 승인 2011.04.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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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를 열어가는 국민운동의 중심체로”

▲ 자신의 맡은 바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 자신의 맡은 바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전체적인 안보 불감증으로 안보에 대해 군민들이 많은 인식을 함으로써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국가관을 심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최성균(회장·75), 그는 군민들이 증평군 발전에 함께 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공화당 시절부터 당원 생활을 해 오면서 민정당 시절에는 중앙위원과 상무위원을 했다. 현재는 한나라당 당원 생활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증평읍 증평리 16번지에서 2남 2녀의 셋째로 태어나 증평초, 증평중, 청주고, 청주대 상학부 상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부터 1974년까지 4년 간 형석재단인 형석중학교에서 수학과 기술과목을 가르친 교사의 길을 마칠 때까지 형석중학교 설립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 회장의 아버지 최기봉은 5형제 중 장남이었다. 그 중 셋째인 작은 아버지 최광로는 23세의 나이에 육군소령으로 전사, 넷째인 최광주 작은 아버지마저 21세 때 전사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장남인 최정균 형은 6·25때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해 최 회장이 장남 역할을 해온 것이다. 최 회장의 아버지는 괴산군 전몰군경유족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증평 지역을 위해 다각적 일로매진
최 회장은 2002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3대, 4대에 걸쳐 8년간 증평문화원장을 역임했다.
그 당시 예산이 열악했지만 군민의 화합과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해 증평군지, 증평문화원 10년사 등을 펴낼 정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문화예술의 날을 지정해 타 지역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인삼골 증평문화제를 주관했다. 이처럼 침체되기 쉬운 지역의 문화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공헌도가 인정됐다.
그는 괴산군과 증평군이 분리되기 전부터 평통 생활을 해 오면서 2009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 14기 평통자문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자문위원들을 중심으로 평화통일을 국민 속으로 확산 시키는 선구자적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소외되기 쉬운 노년세대의 지식과 경험을 미래 지역사회의 기둥이 될 차세대들에게 대물림 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써 실버문화학교를 기획 실시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야생초 이야기'라는 참신한 문화 활동의 지평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역민의 인물에 대한 탐구의 장으로써도 일익을 담당했다. 백곡 김득신 학술 세미나를 개최해 증평시민의 문학 활동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향후 계획으로 5월 22일에 증평형석고, 증평공고, 증평정보고 3개교에서 '통일골든벨'을 개최해 100여 명의 학생을 뽑아 충북도로 올려 보낼 예정이다.
한편, 5월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간에 걸쳐 형석중, 증평중, 증평여중에서 80여 명의 학생을 중심으로 평택 천안함 전적지와 철원 등에 통일준비캠프(병영체험)에도 참여 시킬 계획이다. 안보교육 차원에서 중·고생을 대상으로 활동 시킬 미래지향적 계획도 세우고 있다.

■ 그의 일상을 들여다 보면
1980년도부터 부업이다시피 했던 '충북장 모텔 & 사우나'를 현재 32년간 직업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큰 도로변 시장이 있는 중심지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어 지인들을 많이 만나고 '정년이 없다'는 열정으로 일한다. 이처럼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현역인 것이다.
1980년대 초에 목욕비 400~500원 정도 하던 것이 현재는 4500원이다. 1층에는 남탕, 2층에는 여탕이 있고, 3층과 4층에는 객실이 각각 12개씩 남녀 대중탕(사우나)과 겸업을 하고 있다.
김봉회(63)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최 회장과는 선후배 관계로 증평의 원로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성질이 급하지만 추진력이 있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다”라고 덧붙인다. 일례로 “증평출장소에서 증평군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그 당시 증평군 추진위원장을 맡은 저(김봉회)와 전 정우택 국회의원, 전 김재욱 증평출장소장, 전 증평문화원장 최성균과 함께 증평군의 아이템을 넣어준 역할을 했다”고 긍지를 밝힌다.
그는 1974년부터 1997년까지 20여 년 넘게 합자사 삼풍토건을 운영했다. 대학교 졸업 전까지 항상 막노동자로 쉬지 않고 일하면서 6·25이후부터 40여 년 간 신흥건설을 운영한 최 회장 아버지(최기봉)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증평 지역사회를 위해 증평중 총동문회장, 증평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장, 증평포럼 초대회장, 단군성조 증평봉찬회 이사, 괴산법원조정위원, 증평군 체육회고문, 증평군 방위협의회 위원, 민주평통 9기, 10기 위원, 증평정보고 학교운영위원장과 증평군민장학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지역의 원로로서 각 단체 소속의 봉사활동을 통해 자문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한다. 늘 묵묵히 내색하지 않고 조언하며 이끌어주는 그의 역할에 숨은 일꾼이라 할 수 있다.
'항상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살자'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편파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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