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읍 미암 2리
증평읍 미암 2리
  • 나영순
  • 승인 2011.03.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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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산업 전초기지 부상

증평읍 미암 2리는 한적한 시골마을이 아니라, 우리나라 태양광산업 기지로 주목을 받는 기지다. 초입부터 마을 안쪽까지 넓은 농토가 있고, 마을 뒤편 언덕은 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마을 앞에 68만 2000㎡ 규모의 증평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에 착공해 3년의 공사 끝에 지난 2009 3월에 준공된 증평일반산업단지에는 태양전지 관련 4개 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철강㈜ 증평공장과 ㈜신성홀딩스가 지난 2008년에 공장 건립을 완료하고 가동 중이다. 나머지 ㈜에이원테크, 대림통상㈜, SK에너지(주), (주)후지라이 테크 등도 일부 가동을 하거나 생산시설 마무리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400명의 직원들이 박막태양전지모듈을 생산하는 한국철강㈜ 증평공장, 600여 명 인력이 태양전지(셀)을 생산하는 ㈜신성홀딩스, 200명의 인력이 리듐이온전지분리막을 생산하게 될 SK에너지(주), 350명의 직원이 태양전지(셀, 모듈)를 생산할 ㈜에이원테크 등은 에코-에너지 산업 기업들이다. 따라서 증평일반산업단지가 전국 최다 에코-에너지 산업 기업을 유치한 기지로 평가되고 있다.

▲ 미암 2리 표지석 앞에서 주민들이 환한 웃음으로 동네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 미암 2리 표지석 앞에서 주민들이 환한 웃음으로 동네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 수백년 전 원님이 있던 마을
이처럼 미암 2리는 우리나라 태양광산업의 전초기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지금부터 수백년 전에는 원님이 계신 곳으로 풍요롭고 신비로운 고을이었다고 한다. 증평읍 청사에서 보강천을 경유 동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이 마을은 형석 중·고등학교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옛날의 군소재지였던 미암리는 동헌과 시장이 있었다. 지금의 삼거리를 금부(죄인을 다스리는 곳)라 했다고 한다. 동헌이 섰던 자리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깨진 기왓장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미암 2리 시화부락에는 각처에서 모여드는 상인들의 말(馬) 때문에 역마촌(驛馬村)을 이루었고, 인심 또한 좋아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그런데 부부간의 금술이 좋은 사또에게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항상 근심하던 사또 부인은 자식을 얻기 위해 부처당골 깊은 산골에서 매일 같이 부처님께 백일 불공을 드리며 자식 얻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여인의 방종이 속세를 등진 중생을 유혹하여 정을 통했다고 한다. 부인의 좋지 못한 행실을 알게 된 사또는 중생과 부인의 잘못을 중벌로 다스렸다. 온 고을 백성이 보는 앞에서 머리, 몸 등을 토막쳐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충청감사에게 진언하여 동헌을 지금의 청안으로 옮겨감으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고을이 폐허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고을 일부 동리를 망골이라 부른다. 절이 있던 곳을 부처당골로 부르며 절터가 남아 있다. 죄인을 다스렸던 삼거리 고갯마루는 옥고개라 부른다. 동헌이 있던 자리는 관골이라 칭한다. 지금도 관골에서는 깨진 기와장이 촌부의 손끝에 무수히 출토되어 그 옛날 화려했던 시화마을을 증명해 주고 있다.

▲ 시화마을 쉼터는 주민들이 쉬어가며 돈독한 정을 나누는 곳이다.
▲ 시화마을 쉼터는 주민들이 쉬어가며 돈독한 정을 나누는 곳이다.
◆ 흔히 '수예'로 불리던 시화마을
옛날 현의 이름은 도안현이라고 했다. 세종실록에는 현재의 시화(時化)가 시화(時和)라 명명되어 있다. 도안현은 사방 천칠리라 전하며 역촌리(驛村里)란 이름은 청안현이 관장할 때 명명되었다.
시화마을은 현재 미암 2리를 말한다. 흔히 수예라고도 한다. '때때로 변한다'는 뜻으로 시화(時化)라는 이름이 붙여져 전해 내려오고 있다. 당초에는 시화마을이 아니었고 동안리라는 동네였다. 지금 시화마을에서 서북쪽 800m 떨어진 미암천(두타산에서 대지랭이 마을을 거쳐 시화 서쪽으로 흘러 중자천에 이르는 작은 내) 건너 서북쪽 작은 봉우리(율봉재)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송재원 노인회장은 “대봉산 금대야봉에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며 “기우제를 지내도 가뭄이 극심하던 중 그곳에 묘를 파냈더니 신기하게도 비가 왔다”고 한다. 그는 “피해자가 고소를 해 주민 5명이 집행유예를 받은 적이 있을 만큼 신기했다”고 한다.
▲ 마을회관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각종 대소사를 의논한다.
▲ 마을회관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각종 대소사를 의논한다.
현재 50여 가구 130여 명이 살아가고 있는 미암 2리는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60% 정도 차지하고 있다. 아직은 노인층이 많지만 증평일반산업단지가 조성돼 있어 앞으로는 젊은 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주민들은 이 마을 출신으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조선조 형조판서를 지낸 이규팽의 자손인 이순호(74) 전 감사원 서기관, 증평출장소에서 증평군으로 승격시킬 때 활약했던 엄병석 전 괴산군 3대 의원, 송재천 예비역 중령, 김신조(72) 예비역 대령, 문창호(84) 전 증평초 교장, 송명식(67) 전 안성 보체초 교장, 박석규 증평군의회 의원, 김용하 증평군 농정과장, 김홍철 증평읍장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한편, 한국국악협회 증평군 남도민요 박근우 회장(63)은 작년까지 이장을 맡아 활동했다.



우/리/동/네/사/람/들

“일반산업단지 조성돼 경관 답답”

김운형(60) 이장
김운형(60) 이장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증평읍이 다 보일 정도로 경관이 좋았는데 기 조성된 증평일반산업단지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경치를 막아버렸다. 증평일반산업단지가 우리나라 태양광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주민입장에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도로가 새로 개설되고 공장이 가동되면서 지역 발전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에는 불편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서로 힘을 모으고 있다. 2009년 8월에는 동네 기금 165만 원을 들여 방범용 CC TV를 설치해 주민들의 걱정을 많이 덜었다.



“회원들 힘 모아 마을 돕겠다”

송재원(78) 노인회장
송재원(78) 노인회장
주민 가운데 70세 이상 노인이 6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마을회관에 모여 서로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하고 있다.
노인회 회원들이 콩 소득 사업을 하고 배추 등을 재배해 마을에 보탬을 주고 있다. 특히 향우회가 잘 조직돼 있어 경로잔치 등 마을행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로당도 건립해 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앞으로도 주민들이 건강하고 화목한 삶을 영위하도록 회원들과 함께 돕겠다.




“효도관광으로 친목 다져”

신정식(70) 노인회 총무
신정식(70) 노인회 총무
해마다 실시되는 효도관광을 통해 노인들이 즐거움을 서로 나누고 있다. 증평노인복지관이 지난 3년간 우리 마을을 선정해 부녀회와 함께 경로잔치를 베풀어 준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1907년 이준(李儁)·이위종(李瑋鍾)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참석한 독립운동가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선생의 부인 묘가 우리 마을에 있어 자랑스럽다. 특히 마을부녀회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제공해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부녀회원들의 도움에 감사”

홍순옥(58) 부녀회장
홍순옥(58) 부녀회장
증평의용소방대장을 20년 동안 해 왔었는데 부녀회원들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부녀회도 올해로 9년 째 이끌어 가고 있다. 부녀회원들이 간장과 된장 장아찌(매실, 무, 오이, 깻잎, 마늘쫑) 등을 만들어 인삼골 축제 때 판매해 기금을 조성하기도 한다. 또 부녀회원들이 축제 때 도토리 빈대떡, 해물 빈대떡 등 먹을거리를 판매해 모은 돈으로 노인들에게 식사대접도 하고, 효도관광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배종희 총무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쾌적한 환경에 주민들이 편안”

송창흠(61) 새마을지도자
송창흠(61) 새마을지도자
저희 마을은 예로부터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곳으로 화합을 위해 주민들이 서로 솔선수범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동네 어귀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을 두루 살피며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오래 전 새마을 사업 시행할 당시 최우수 부락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 마을 청소에 앞장서는 주민 모두에게 감사하다.


우/리/동/네/자/랑/거/리

▲ 이성산과 이성산성
▲ 이성산과 이성산성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이성토성, 백제의 낭비성, 신라의 상당산성을 경계로 해 3국이 서로 전진기지를 빼앗기 위해 전투가 빈번했다고 한다. 고구려 군사들은 이성산의 연봉에 성을 쌓고, 감시를 하면서 현재 도안초등학교가 소재한 화성리 일대에서 훈련을 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성산은 증평에서 도안을 향해 1km 쯤 가다가 신청안교를 건너 좌측 형석중·고등학교 뒤로 3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두타산맥에서 분지한 지맥이 두타산(598m) 147고지로 낮아지다 200~260m의 이성산 연봉까지 4km나 뻗어나 있다. 이성산은 남북으로 쌍봉(240m, 260m)을 이루고 있는데 2개의 독립된 토성이 남북으로 400m 떨어져 있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남성은 둘레 1340m 규모다. 북성은 474m이다. 남성이나 북성 모두 유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 대봉산
▲ 대봉산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농수 관리 시설이 없어 그 해의 풍년·흉년을 하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뭄이 들면 고을의 행정책임자인 현감, 면장이 대봉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 가을이면 풍년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 산에 올라가 감사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대봉산에는 금이 매장되어 있는데 이를 캐거나 굴을 뚫게 되면 마을이 망하거나 행위자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대봉산은 증평에서 송산교를 지나 서북쪽으로 약 3km쯤 가면 대지랭이 마을 앞에 우뚝 솟아있는 산으로 이 고장에서 가장 정기가 어린 영산이다. 일제치하에 있을 때는 이 산의 정기와 혈을 끊기 위해 쇠못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대봉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충청읍지에 '금대야봉'으로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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