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만 前 증평부군수
김종만 前 증평부군수
  • 나영순
  • 승인 2010.12.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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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머리나 직위로 사는 게 아닌, 노력


어떤 일이든 이루려는 뜻이 있는 사람은 마침내 이룬다(有志事者竟成)는 신념으로 생활해온 김종만 전 증평부군수를 찾았다. 고향은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역말)로 양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데, 공무원 생활과 부인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동생이 모시는데 동생과 제수 씨한테 고맙고, 부모님께는 늘 죄송할 따름이라며, 부모님이 건강하신 것도 다 복이라는 말 속에는 제대로 모시지 못함의 송구함이 묻어났다.

■ 내 직업은 일곱 번이나 바뀐 고생 끝의 락(樂)

음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5세부터 공무원의 길에 접어든 김종만 전 증평 부군수는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칠 때까지 하루도 쉼 없이 열정을 갖고 공부하는 삶으로 살아왔다. 그는 현직에 있으면서도 충북자치연수원, 충청전문대, 충주대 등에서 강의해왔고, 현재는 극동정보대학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로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에 활력이 넘쳐났다.
외판원, 철공소메질을 비롯하여 택시기사, 세탁소 운영 등의 삶을 살다가 공직에 발을 내딛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하며 일곱 번이나 바뀐 직업이 현재 대학 강단에서 15시간씩이나 강의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고, 그 당시 청주에서 학교를 졸업한 동료들한테 뒤지지 않는 것은 무던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충북대학교 대학원 행정학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5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노력파였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할 정도로 그의 학구열이 대단했다. 그의 두 자녀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꼭 필요한 사람이되라는 그의 가르침으로 직장에서 칭송을 받는 것은 그의 노력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았음이 분명했다.

■ 모든 일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순리대로 처리
“나한테 잘 해 주는 이유는 나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하거나 나를 아주 좋아해서거나 둘 중에 하나일거에요” 그의 의지 속에는 공직 생활을 해 오면서 혹여 어려운 부탁에 휘말리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순리대로 오직 도민과 군민을 위해 일처리를 해 왔음이 짐작 간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업무에 최선을 다 하다보면 어차피 승진은 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청렴결백(淸廉潔白)의 성격을 엿보게 된다.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려니 귀가시간은 늘 늦었고, 거기다가 장학금까지 받았으니 사생활을 얼마나 줄여가며 공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쪽이 힘들면 다른 쪽도 마찬가지로 2005년 퇴직 후 1년 만에, 부인을 위해 마련한 현재 살고 있는 증평 한라비발디 입주를 앞두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고생보다도 아내가 있었기에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그를 보며 부인의 장기투병생활 동안 잘 못해 준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에서 정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40대 중반에서야 집 장만을 할 정도로 공직자가 맞벌이가 아니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근검절약하며 살았다는 것에 성실함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손꼽았다. 박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허리띠와 시계가 너무 낡아 의사가 대통령인 줄 몰라 볼 정도로 검소했던 오직 국민의 가난극복 일념을 극찬하며 그는 다시 한 번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 부군수 시절 직원들에게 월요전자편지 화제
일례로 '월요일 아침 전자 편지'에서 직원들에게 “인간은 항상 자기 일에 최대의 관심을 갖는 자기중심성,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가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하는 자부심,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변명의 구실이 아닌 현실적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참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공직자들의 생활에 큰 교훈이 되었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편, 전국 최초로 '신생아 건강보험 들어주기'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한 점에서 현실의 문제를 임기응변적인 시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을 내다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그의 노력이 돋보였다.

■ 어찌 보면 의식의 차이일 뿐
대세의 흐름을 역행하면 안 된다. 파도를 타듯 대세의 흐름을 읽고 계절의 옷을 갈아입듯 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성공 할 수 있다. 인생살이에서 옛날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등을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자주하는 말이 진리라는 그는 어른들 앞에서 특강을 할 때면 어른들로부터 배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그들을 통해 지혜를 터득하고 고령화란 현대 사회에서 유쾌하게 나이 먹어가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가는 것 또한 시대의 흐름으로 봐야하고, 인생살이는 사이클이 있어 개인, 집안, 국가가 어떤 세대든 서로 융화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옛날에 고생했던 사람들과 우리 세대는 종자돈을 모은 세대로 근검절약하며 살아서 돈도 제대로 못 쓰지만, 40~50대는 돈을 모으면서 쓰는 걸 배운 세대이고, 20대는 아버지가 고생하는 걸 안 보고 자라 쓰는 것만 배워 쓰는 세대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는 그의 철학 속에서 순리는 흐름대로 가지만 의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30분 정도는 당연히 걸어가는 걸로 알았던 세대와 5분 거리도 자동차를 타고 가야하는 세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 한국의 실정이 안타까워
사람은 태어났을 때 머리로 먹고 사느냐, 몸으로 먹고 사느냐 둘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하는 그는, 부모가 자녀의 진로를 잘못 선택해주면 자녀도 고통스럽고 시키는 부모도 고역이라며, 간혹 상식을 벗어난 부모들이 자녀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자녀의 적성을 무시한 채 강요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현 시대는 시간적, 경제적으로만 힘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이 일그러지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그의 논점은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학부모들이 자녀의 진로결정에 관여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 당부하는 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온화함 속에 깃든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모든 일을 당당히 해내고 있는 열정이 아직도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철두철미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자신감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행정은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최선의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지 이해관계자가 다 만족해하는 묘안은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무책이 상책일 때도 있다. 그런데도 비전문가가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논리가 마치 묘책인 양 주장하며 선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며 앞으로 신문사는 지역의 진짜 모르는 것을 많이 알려주는 즉,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진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참 진리를 당부하는 말로 인터뷰 2시간 동안 긴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금세 지나가는 것은 그의 살아온 과정이 얼마나 노력의 대가가 주어졌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던 공직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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