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 음성경찰서장
연정훈 음성경찰서장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11.2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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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든 고향 일이라면 발벗고 나설 것

출생지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 150

약 력
1977. 2. 증평 도안초등학교 졸업
1980. 2. 증평 형석중학교 졸업
1983. 2. 청주 청석고등학교 졸업
1987. 4. 경찰대학교 졸업
2004. 2.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법행정) 졸업



경 력
04. 2. 13. ~ 06. 3. 13. 서울청 용산경찰서 경비과장
06. 3. 13. ~ 08. 3. 24. 서울청 혜화경찰서 경비과장
08. 7. 13. ~ 09. 7. 9. 충북지방청 경비교통과장
09. 7. 10. ~ 현재 충북청 음성경찰서장


지난 11일부터 12일 양일간 서울서 치러진 G20정상회의 뒤에는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노심초사한 스텝들이 있다. 정·재계의 최정상급 인사들인만큼 이들의 안전을 위해 갑호비상근무태세에 돌입했던 경찰의 철통같은 경계에 다행히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미처 숨 고를 틈도 없이 경찰은 연말연시 특별방범·형사활동에 나섰다.
평소 기자가 존경하는 경찰청에 근무하는 선배가 경찰 내에서 존경하는 후배라고 늘상 이야기 하던 우리고장 증평 출신인 연정훈 음성경찰서장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7월. 음성서에 부임한 직후였다. 1년 남짓한 시간을 지켜본 연 서장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표현처럼 온화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또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출중한 리더십으로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감히 공직자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겸손의 미덕까지 갖춘 그를 본지 출향인란에 소개하기 위해 수차례 방문과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자신보다 훌륭한 고향 출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다며 그때마다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다. 그러나 유비가 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했듯 칠고초려 끝에 연말연시 특별방범대책 마련에 여념없는 그를 반강제적(?)으로 인터뷰 할 수 있었다.

Q 고향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저희 고향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 다들 그렇듯이 저 또한 어린 시절 친구들과 뒷동산에서 뛰어놀고 냇가에서 가재 잡고, 소 꼴 먹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여름철이면 도안역 앞 냇가에서 친구들과 웃통벗고 미역감고 피라미 잡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농사일 돕느라 여름방학에는 다른 지방에 놀러 다닌 기억이 거의 없었죠. 동네에 담배농사를 짓는 가구가 많았는데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거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같은 김장철에는 리어카에 배추 한 접 가득 싣고 도안에서 증평까지 부모님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줄곧 반장을 했지만 수줍음 많은 조용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학교는 증평중학교에 입학해서 형석중학교를 졸업했고, 청주로 나와 청석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Q 그럼 증평중학교에서 형석중학교로 전학을 하셨단 말씀이신가요?
A 예. 증평중학교에 입학해 20일 쯤 다녔습니다. 당시 증평중학교는 핸드볼이 유명했는데 중학교 배정 추첨 시 핸드볼 선수가 형석중학교로 배정받는 바람에 저와 맞바꿔 형석중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던 동네는 이성산 마로 밑에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집에 돌아가려면 이 산을 혼자 넘어야 했어요. 워낙 산골이라서 저녁 5시만 넘으면 벌써 컴컴해져요. 그럼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무조건 내달렸어요. 그 뒤 아버님이 자전거를 사주셔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Q 프로필을 보니 고등학교는 청석고등학교를 졸업하셨던데 통학을 하셨나요?
A 고교 1, 2학년 동안에는 집에서 통학을 하고, 3학년 되어서는 청주에서 작은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고 다녔습다. 그래도 한달에 한번 집에 올 때면 증평이라는 이정표만 보여도 부모님과 친구들이 보고싶어 눈물이 울컥 했어요.

Q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어려서 돈을 정말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돈과는 관계없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Q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향 친구들이 있으신지요.
A 친구들은 언제 봐도 여전하더군요. 고향 친구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그저 사람이 그립고 고향이 좋아 만나는 친구들이니까요. 제가 도안초등학교 50회인데 모임이 청주와 서울에 두 팀이 있어요. 그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요즘 들어 가끔씩 만나 소주도 한잔씩 하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추억하곤 합니다.

Q 고향에는 자주 들르시는지?
A 지금은 음성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동안 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휴가가 아니면 고향에 자주 내려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전보다는 자주 고향에 들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Q 아직 고향에 누가 계시나요?
A 부모님께서 농사일을 하시며 고향에 살고 계십니다.

Q 올해의 화두는 당연 '공정한 사회'였습니다. 국가 공권력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경찰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지난 수십 년을 사건현장에서 뛰면서, 또한 경찰의 꽃이랄 수 있는 총경이라는 지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건들을 겪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보람 또한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찰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 사건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그렇습니다. 저 역시 공정한 사회,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법이나 힘의 논리에 힘입어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는 선진사회라 할 수 없습니다.
24년간 경찰관으로서 생활하면서 여러 사건사고를 접해왔습니다만 초임시절 종로서 형사반장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형사당직을 하고 있었는데 조직폭력배 한명이 탑골공원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아주머니를 각목으로 때리고, 포장마차를 부쉈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조직폭력배를 구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같은 아주머니를 각목으로 폭행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그 조폭을 구속하고 아주머니 치료비와 포장마차까지 보상해준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Q 당시만 해도 경찰대 하면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했고 서울대에 갈 정도의 실력을 요할 만큼 입학이 쉽지 않던 시절인데 굳이 경찰대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사실 고3 여름방학 때 까지만 해도 대학입시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경찰대를 추천해 줬어요. 사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원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1차에 합격하고 나니 그때부터 경찰에 대한 동경과 자부심, 책임감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경찰생활, 지금까지 후회해 본 적 없습니다.

Q 절친한 사이였으니 누구보다 서장님에 대해 잘 알았을테고, 서장님의 강직하고 책임감 있는 성품이 경찰에 잘 어울린다고 친구분은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음성경찰서장으로 취임하신지 1년이 넘었습니다. 취임 후 음성군의 5대범죄(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검거율이 34.3% 증가하는 등 음성군민의 안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신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 오셨는지?
A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역주민이 평온하고 안전한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치안활동을 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 음성경찰서에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절도예방, 교통사고 예방 등 서민생활안전에 중점을 두고 마을단위 CCTV 설치, 교통안전홍보와 시설보강,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 등을 해 왔습니다. 또한 다문화가정 및 외국인들의 어려운 삶을 돌아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음성경찰서장으로 재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A 여러 가지 많이 있겠지만 저는 그동안 어르신들의 교통안전을 위하여 나름대로 힘써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음성군노인회 정인성 회장님께서 저만 보시면 소주 한 잔 사주신다고 말씀하시며 음성군 전 지역 순회 안전교육을 손수 하시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관련 노심초사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너무 걱정 말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정겹게 남아 있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생활신조나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A “繩鋸木斷 水滴石穿(승거목단 수적석천 ; 노끈으로 톱질해도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물방울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낸다)” 꾸준히 힘써 노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채근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땀방울이 없이는 이룰 수 없고, 쉽게 이룬 것은 쉽게 잃는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실은 항상 이긴다고 믿습니다.

Q 앞으로의 바람과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다면?
A 경찰관으로서 사심을 버리고 진정한 봉사자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정말 멋있는 경찰관이었다는 기억으로 남고 싶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물론 경찰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경찰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파수꾼으로서 누구보다도 고생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이를 인정해 주시고 신뢰하며 존경받는 경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민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언제든 불러주시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는 경찰이 반드시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Q 은퇴 후 고향에 정착할 계획은 없으신지?
A 고향에서 살고 싶지요. 고향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제가 고향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희 동반자인 사람하고도 상의를 해야 되겠지만요. 어떻든지 최소한 고향 근처에서라도 정착하고 싶습니다.

Q 고향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크고 멋진 꿈을 꾸기를 바라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Q 고향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A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한시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난 사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자다가도 어디서 '증평'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이 떠지고 가슴이 뭉클해 지니까요. 이제는 어디에 있든 고향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겠습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경찰들은 주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자세로 일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요. 해결해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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