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훈장 수상자 박영순
국민훈장 수상자 박영순
  • 괴산증평자치신문
  • 승인 2019.06.2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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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말기 시어머니 봉양해 5년만에 완치시켜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도울 거라 생각했어요.”
박영순 씨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효도를 실천하는 분들이 많은데 과분한 상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박영순 씨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효도를 실천하는 분들이 많은데 과분한 상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해 암을 완치시킨 증평군 자원봉사의 '대모' 박영순(67) 씨가 훈장을 받았다. 그는 효행부문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5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7회 어버이날 기념 ‘효사랑 큰잔치’에서 수상했다. 

시어머니 성심껏 병수발

그는 40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1978년 남편과 결혼한 그는 이때부터 줄곧 시부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1986년 시아버지가 별세한 지 1년 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머니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아 위와 식도를 절제했다. 병원에서조차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내렸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의류매장을 접고 시어머니 병시중에 매달렸다.   
“당시 병원에서 수술한다고 해도 완치를 장담 못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셨어요. 젊어서 고생하시고, 겨우 먹고살 만해지니 병을 얻으신 시어머니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이후 시어머니의 병 수발에 매달렸다. 생계는 직장에 취직한 남편의 월급으로 꾸려나갔다.
는 “어머님께서 위와 식도를 절제한 상황이라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이유식처럼 음식을 잘게 갈아서 하루 6번씩 어머님께 드렸다”고 했다.
병간호는 쉽지 않았다. 3시간에 한 번씩 시어머니 음식을 준비하고, 손발을 주무르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났다고 한다. 빨래는 퇴근한 남편에게 맡겼다.  
“항암 주사를 맞고 나면 고열에 몸살 기운이 있어서 자는 시간을 줄여 온몸을 닦아드렸어요. 수술 후 6개월 뒤에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성당과 집을 오가며 하루에 1만보씩 운동을 시켜드렸지요” 
시어머니는 그가 쏟은 정성 덕분에 서서히 기력을 회복해 수술 5년 만에 위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시어머니를 간호하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진 그는 1998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입학,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1년에는 상담사 1급과 미술상담사 자격증까지 손에 쥐었다.
그는 2002년부터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다. 또 2008년 개관한 증평군노인복지관 초대 관장을 맡아 6년 6개월 일하면서 지역 노인 돌봄에도 앞장섰다. 관장에 취임해서 어르신 돌보미사업, 독거 어르신 반찬 배달 사업을 펼치고 어르신 인지 능력 개발 프로그램과 취미활동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어렵고 힘든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맞춤형 지역복지사업 전개를 통하여 빠른 시일 안에 노인복지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와 손자들이 1박 2일 동안 청소년 수련관에 머물면서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효경 사상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이 난다”며 “어르신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강연과 영화 관람이나 미술 감상 같은 놀이문화의 다양성을 제공했다”고 회상했다.

노인복지관 초대관장 역임

그는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아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 쇠약해진 시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시어머니의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섬망증세가 있어 더 바짝 붙어 있다.  그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효를 실천하고 선행을 베푸는 분들이 많은데 과분한 상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당연한 일인데 요즘엔 세태가 달라지다 보니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 것 같다. 며느리도 자식이니까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요즘 요양원이 많이 들어섰지만,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님을 모시면서 재가복지와 관련한 일도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그는 1남 1녀의 자녀도 훌륭하게 키웠다.
장녀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영국에 유학,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아들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웃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내 일같이 발 벗고 나서 해결하고 친근한 미소로 대하는 꼭 필요한 존재.
리더십이 남달라서 지역사회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오피니언 리더. 거기다 가정에서는 지극한 효심을 가진 착한 며느리, 자랑스러운 어머니,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복지 전문가.  박연순 씨가 노인으로 지역사회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등불’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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