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 받는 ‘연미당의 삶’
재조명 받는 ‘연미당의 삶’
  • 괴산증평자치신문
  • 승인 2019.04.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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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연미당’ 역사 다큐 제작…KBS-1TV 방영
대한민국임시정부 전장 시절의 연미당 가족. 뒷줄 왼쪽 첫번째가 연미당, 옆은 남편 엄항섭, 어린이는 연미당 자녀다. 2남 4녀를 임시정부 이동을 따라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산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전장 시절의 연미당 가족. 뒷줄 왼쪽 첫번째가 연미당, 옆은 남편 엄항섭, 어린이는 연미당 자녀다. 2남 4녀를 임시정부 이동을 따라 각각 다른 지역에서 출산했다.

 

증평군을 대표하는 독립투사 연미당과 그녀의 가족 3대가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다.
연미당은 독립운동가의 딸이자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며 자신 역시 독립운동에 앞장 선 독립투사다.
그녀는 증평군 도안면 출신 독립운동가 연병환의 딸이다.
연병환은 1907년 정미7조약이 강제되자 공직에서 사퇴했다. 1908년 청주군수로 발령받았으나 이를 고사하고 중국 용정으로 간 뒤 동생 3명을 불러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연병환은 용정해관에서 번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당시 연병환의 집은 지역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청산리대첩에 숨은 공로가 있다고 전해지는 등 공적이 인정돼 2008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에 추서됐다.
연미당의 남편 엄항섭 역시 독립에 평생을 바쳐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그는 보성법률상업학교에 다니고 있을 당시,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프랑스 조계 공무국에 근무하면서 임시정부에 일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상하이청년동맹회 집행위원, 임시정부 헌법 개정 기초위원, 한국교민단 의경대장 등으로 활동했다.
연미당은 1927년 19세에 엄항섭과 결혼한 뒤 청년여자동맹, 애국부인회, 한인여자청년동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가 일어났을 때 도시락 폭탄을 싼 보자기를 직접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임시정부가 일제를 피해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8000km의 대장정을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을 모시며 함께 했다.
연미당의 딸 엄기선 역시 중국방송을 통해 임시정부의 활동상황과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데 매진, 199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군은 이러한 연미당 가족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KBS와 힘을 모아 ‘독립투사 연미당’ 역사 다큐를 제작했다.
이번 다큐는 KBS청주총국이 1년의 제작과정을 통해 중국 현지 임시정부 루트 촬영과 드라마 재연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지난 13일 KBS-1TV(전국방송)를 통해 방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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