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 호 목공예가
이 광 호 목공예가
  • 괴산증평자치신문
  • 승인 2017.10.2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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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기술 재능기부하는 ‘아이디어 뱅크’
▲이광호씨가 국내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침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광호씨가 국내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괴산읍에서 화양동 가는 길 문광면 흑석리에 가면 대형 애드벌룬 두 개가 하늘에 떠 있다.

대형 행사장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다도향'이란 차문화 전진기지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차를 배울 수 있고, 볼거리가 많은 찻집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전통차, 보이차 등 차를 접할 수 있고, 차탁, 다반 등 각종 희귀한 공예품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찻잔, 차주전자 등 다구도 접할 수 있다.

한켠은 '다도향'이란 찻집이고 한켠은 '우석목공예'란 공예업체다.

우석목공예는 지난해 충북우수공예업체로 선정됐다. 야생화볼펜과 야생화만년필로 받은 것이다.

스님 만나 차에 입문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불혹의 나이에 업자의 배신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어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분노를 삭였다. 그러던 중 어느 큰 스님을 만나 차를 접하게 됐다.

“차를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나와 주변인들과 청아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 나눔 속에는 진실한 삶의 일부분이 담겨 있겠지요”
그는 “차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며 “차를 통해서 타인에 대한 증오심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차와 관련된 다구를 개발, 생산하게 된 것이다.

그는 차생활에 필요한 소품 여러가지를 창안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물버림 다반이다.

다반은 찻잔 등의 다구를 올려놓거나 운반하기 위해 사용하는 쟁반으로, 주로 나무로 만든다. 다반을 나무로 만드는 이유는 가볍고 소리가 덜 나고 미관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물버림 다반은 회화나무 통판을 친환경소재로 방수처리, 반영구적인 게 특징이다. 거기다 퇴수구멍을 뚫어 사용이 편리하다.
“10여 년 전에 개발했지요. 지인들이 특허를 출원하라고 성화를 댔지만, 원하는 사람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지요. 이를테면 재능기부지요. 허허“

목공예기술 '재능기부'

차를 우려마시는 것은 근원적으로는 마음과 정성을 담은 행위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차 맛을 내는 데 정성을 들이며,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손님과 주인 등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는 “주민들이 전통?차문화를?통해·힐링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며 “빠름에 익숙한·요즘 사람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을 다반사로 일컫는다. 향과 맛에 취하다보면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안정과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다. 잊고 있던 여유로움을 되찾는 데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차는 나눔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다인들은 좋은 차가 생기면 지인들과 나누어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과정에서 이타심을 키울 수 있다.
개펄에 묻었다 말린'침향' 보유

그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600년 이상 된 대형 침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창고에는 대추나무, 살구나무, 회화나무 등 구하기 힘든 공예목이 즐비하다. 그 중에는 영산강 포구에서 구했다는 100kg으로 추정되는 침향이 있다.
선조들은 미륵이 출현하기를 기원하며 향나무를 땅속에 묻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고랑에 묻었다.

개펄에 묻어두었던 향나무는 침향이 되면 물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향나무를 그대로 말려 태우면 그으름이 생기지만 개펄에 오래 담가두었다가 말린 침향은 그으름이 없어 귀하게 쳤다.

옛 사람들이 침향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던가는 사리함에서도 드러난다. 사리함은 겉을 금동으로 감싸고 안에 옥함이 있다. 그 옥함을 열면 사리와 직접 닿는 부분이 침향으로 돼 있다.

“침향은 흡사 해적들이 남긴 '보물지도'처럼 미륵신앙의 비밀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침향은 모조리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지요”
고려 말 혼돈의 시대. 망해가던 나라의 권력은 탐욕과 부패로 눈이 멀었다. 창궐하는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귀족들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노역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백성들이 '미륵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은 그래서였다. 그들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갯벌에다 향나무를 묻고 그 자리에 매향비를 세웠던 건 미륵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었다. 갯벌에 묻어둔 향나무가 1000년이 지난 뒤에 침향이 돼서 떠오르고, 그 나무를 쪼개서 향불을 피워올리면 미륵이 온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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