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을 위해 돈 벌이 잘하는 군수가 되겠습니다”
“괴산을 위해 돈 벌이 잘하는 군수가 되겠습니다”
  • 괴산증평자치신문
  • 승인 2017.03.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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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헌괴산군수 보궐 선거 후보

명사들이 술의 힘을 빌어 가슴에 담아있는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는 화제의 취중토크.
괴산증평자치신문 열 다섯번째 취중진담 명사로는 다가오는 4월 괴산군수 보궐선거에 도전하는 송인헌 후보를 초대했다.
송인헌 괴산군수 후보는 소수면 아성마을 출신으로 현재 충청포럼 괴산지회장이다. 괴산군수 사회복지과 과장을 거쳐
소수면장, 충북도 농업기술원 행정지원과장, 충북도 자치행정국 세정과 과장, 충북도청 공보관, 음성군 부군수, 혁신도시 관리본부장등
요직을 역임한 그는 37년 동안 현장 행정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20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괴산군수에 출마한 송인헌 후보, 그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탁월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활기찬 괴산, 희망찬 괴산, 행복한 괴산을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송인헌 후보의 치열한 인생사와 괴산군수 보궐선거에 임하는 각오를 들어본다.

Q 평소 주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A 예전에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주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꼭 술을 마셔야하는 자리가 아니고는 거의 먹지 않는 편입니다. 오늘은 인터뷰 이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다양한 직업 섭렵
공부에 재미 붙여

Q 태어나고 자란 곳은 어디입니까?
A 괴산군 소수면 아성마을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누나만 세 분이어서 넷째지만 장남입니다. 누나들과는 나이 차이가 제법 있어서 일찍부터 집안에서 장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죠. 부모님께서는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A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모두 시험을 치르고 입학해야 했습니다. 중학교는 무난한 성적으로 입학했는데 그 시절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공부하기가 싫더라고요(웃음). 졸업시험에서는 하위권이었죠. 그래도 꿈이 컸기 때문에 청주기계공고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 괴산종합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Q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고등학교 졸업 후 한동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막연히 더 큰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을 품게 됐습니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성북구에 있는 염색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물건 배달을 했는데 자전거가 넘어지면 세탁비를 물어내야 하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 시절 급여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소개해준 스탠드바에서 서빙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책이 너무 보고 싶어져 청계천 헌책방 점원으로 일했는데 급여가 너무 낮아서 그 일 역시 그만둘 수 밖에 없었죠.

서울 이모님 댁에서 숙식을 하다 독서실에서 총무를 보게 됐는데 그 당시 서울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열심히 치열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절치부심 노력해 수학은 집합부터 미적분까지 못 푸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독서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였죠.

서울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 만큼 값진 경험을 했던 시절이라 회상합니다.

Q 어떻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신 겁니까?
A 서울 생활을 접고 누나가 있는 충주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 밤에 연탄가스에 중독돼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가져온 공무원 시험 원서를 보게 됐습니다. 낮에는 고추 장사를 하고 밤에는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죠. 친구 세 명이 함께 시험을 봤는데 둘은 합격하고 혼자만 떨어진 겁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니 뵐 낯이 없었습니다.

7급 행정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결국에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지원했고 그 당시 시험을 치른 60여 명 중 혼자만 행정직에 합격할 수 있었죠. 그 때부터 천직으로 여기게 된 저의 공무원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치열하게 공직 생활
현실 감각 뛰어나

Q 37년간의 공직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A 공무원 재직 시절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술 좋아하는 상사들을 많이 모시다 보니 술자리도 많았죠.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일찍 출근해 일할 수 있는 대단한 체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평소 대화와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원래 술 자리라는 것이 어려운 문제도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괴산군청에 20년간 근무하다 도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괴산 촌놈이 도청에 입성해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동료들이 경쟁의식을 갖고 경계 하더군요. 그렇지만 특유의 친화력에 진솔한 마음을 담아 한 명 한 명 다시 사귀었습니다.

그 당시 서류와 서식 등 컴퓨터 작업으로 전환될 즈음이었는데 퇴근 후 새벽 2~3시까지 독학으로 한글 워드를 공부하고 다시 아침 일찍 출근하는 고된 생활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난관에 봉착했던 일은 가축위생시험소 건물을 지어야 하는 업무였습니다. 도에서 청원군청에 가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어렵고 힘들었죠.

인사 시즌에는 상사들이 자기가 필요한 부하직원을 선정하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데려가지 않는 직원들만 뽑아 10명을 사무관으로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해내며 차츰 주변동료들과 부하직원들이 저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도청에서 없어서는 안 될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게 됐습니다.

Q 음성부군수, 충북혁신도시관리본부장 등 요직을 역임했는데 그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A 11만 인구의 음성부군수를 역임하며 군의 지도자로서 해야 할 능력과 자질 등 실무를 통해 현실 감각을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또 충북혁신도시관리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인구 4만 도시를 건설하고 기획하는 실무를 익혔습니다.

음성부군수와 충북혁신도시관리본부장을 지내며 중앙 정부의 예산을 책정 받을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고 자부합니다.

무엇보다 원칙과 소신대로 군정을 논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도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청탁이나 각종 비리를 막을 수 있습니다.

좋은 리더는 내 식구는 내가 감싸고 보듬으며 위로는 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도청에서 근무할 때 이시종 도지사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비록 저와는 다른 당적을 가지고 있지만 존경하는 분입니다. 이시종 도지사처럼 인사 문제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없습니다.

도청 기업지원과 기업계장 시절에는 산자부에 50번 이상 방문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지원을 요청해 결국 1100억 원의 국비를 만들어 그 당시 산하 단체 건물을 신축하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후원자 아내
등산으로 힐링

Q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A 소수면 아성마을 동기동창입니다. 아내는 결혼 전 서울에 있는 학교 서무과 직원이었는데,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둘째 큰 아버님께서 중매를 서 주셨습니다. 아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 당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신이 없어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프러포즈 했습니다.

Q 사모님 자랑을 해주시죠.
A 기본적으로 심성이 곱고 천상 여자입니다. 가장 힘이 되는 저의 든든한 후원자죠. 술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박봉인 공무원 월급에 아이 다섯을 거의 혼자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고 막내 아들이 올해 대학 4학년입니다.

Q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A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체질입니다. 스트레스에 대범하고 덤덤한 편이죠.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는 등산으로 힐링합니다. 누가 나쁜 말을 건네도 대체로 웃어넘기는 편이고 예전에는 술 한잔 마시고 털어버리곤 했습니다.

두 번째 군수 도전
준비된 후보 검증 충분

Q 군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실은 오래전에 마음먹은 일입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년 3년을 남겨둔 채 충북 혁신도시관리본부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군수는 복합행정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고향 괴산에 조금만 더 예산을 책정한다면 저의 다양한 행정 경험이 바탕이 돼 지금보다 훨씬 잘 사는 괴산을 만들 수 있다는 충분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후 2014년 6.4 지방선거 괴산군수 출마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Q 낙선 후 심정은 어떠셨습니까?
A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다음 선거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더욱 열심히 고향 괴산을 위해 봉사하고 군민들에게 꼭 필요한 현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번 째 군수 도전입니다. 이미 준비된 후보로 검증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운동을 해보니 적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만약 51프로의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49프로의 반대의견도 수용할 줄 알아야 올바른 행정을 펼칠 수 있습니다.

관광산업 활성화
스포츠 산업 육성 공약

Q 주요 공약은 무엇입니까?
A 현재 괴산군의 재정자립도는 일반회계 본예산 기준으로 7.96%에 불과합니다. 중앙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비에 의존하지 않고는 군 재정을 꾸려나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우선 예산이 있어야 여러 좋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37년간의 행정경험을 쏟아 붓는 것은 물론, 충북도와 중앙 정부, 국회의원 등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해 예산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힘쓸 예정입니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 부르는 스포츠 산업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종합 스포츠타운을 건설해 여러 종목의 전지훈련을 유치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숙박시설이 부족해 문제가 됐지만 군이 요즘 많이 늘어난 펜션과 계약을 맺고 잘 활용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지역의 여러 선수들이 괴산을 찾게 된다면 청정지역인 우리 군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숙박, 요식업, 관광산업 등도 함께 저절로 활성화될 것이라 봅니다.

더불어 실개천을 살리려고 합니다. 개울이 맑으면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찾게 될 것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의 육성과 지원사업을 펼치는 것은 물론 괴산 전통시장의 주차장 확보, 주택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책개발을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를 토대로 괴산 인구 5만 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이 큰 목표입니다.

Q 괴산군민들께 한마디해주시죠.
A 존경하는 괴산군민 여러분, 저는 공직생활 37년간 이미 검증된 다양한 행정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은 인생 사리 사욕 없이 군민께 봉사하고 잘 보살펴서 삶의 질을 반드시 향상시키겠습니다. 군민들과 소통하고 공무원과 일심동체 되어 괴산 발전을 위해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다른 군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돈 버는 괴산군수가 되겠습니다. 활기찬 괴산군, 잘 사는 괴산군을 꼭 만들겠습니다.




대담 = 이상훈 대표기자
글·사진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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